‘진달래꽃 화가’ 김정수 씨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의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진달래꽃 화가’ 김정수 씨가 서울 인사동 선화랑의 개인전에 전시할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는 이별의 정한(情恨)같은 게 느껴지지만 저는 진달래에서 자식 사랑과 집안의 복을 기원하는 어머니를 떠올립니다. 그런 어머니들의 희생과 혼신을 다하는 열정을 진달래 꽃잎 하나하나에 새기고 싶어요.”

다음달 1~14일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개인전을 펼치는 ‘진달래꽃 작가’ 김정수 씨(59). 그는 “이 땅의 이름 없는 고귀한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차려준 고봉밥을 진달래 꽃잎으로 녹여냈다”며 이같이 말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1983년 2월 프랑스로 건너간 김씨는 1년7개월 만에 파리의 대표적 화랑거리인 생제르맹데프레 센가에 있는 갤러리 발메의 전속작가로 활동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 그림에 대해 시원스레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현대미술의 메카인 파리 소호에 20년간 머물며 몸으로 해답을 찾아 나섰다.

1995년 어느 날 ‘진달래가 바로 한국적인 것’이란 깨달음이 벼락처럼 찾아들었다. 한국 미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진달래에 ‘필(feel)’이 꽂힌 것이다. 그 길로 짐을 싸 서울로 돌아온 게 2004년. 그는 해마다 봄이면 강화도에서 강원 영월, 정선, 보길도, 설악산까지 진달래 길을 따라 여행하며 스케치를 했다.

“파리 생활은 우리 미술의 독창성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절감케 해 준 시간이었습니다. 일본과 중국 미술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길은 우리의 독창성이지요.”

그가 고운 아마포 위에 진달래 그림을 쉼없이 그려낸 까닭이다. 김씨는 서울 경운동의 허름한 작업실에서 하루 14~15시간씩 가로·세로 2~3m짜리 거대한 캔버스에 진달래 꽃잎을 그렸다. 3~4년 전부터 어깨결림이 심해 매일 진통제를 맞으러 병원에 다니면서도 작업은 멈추지 않았다.

화필을 곧추세워 꽃잎 하나하나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누에가 뽕잎을 먹을 때 사각거리는 소리처럼 붓질에도 리듬감을 보탰다. 판소리 등 음악의 득음에 비유되는 경지에 도달하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금방이라도 툭툭 튀어 나올 것만 같은 꽃잎이 화면에 생동감을 준다.

“지난 10년 동안 진달래 그림만 1000점 정도 그린 것 같아요. 이 중 800여점은 꽃잎 색감이 미진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아 폐기했어요. 고통에 대한 오기였는지도 모르죠.”

투박한 대소쿠리가 터지도록 한가득 담긴 분홍색 꽃잎과 허공에 흩뿌려지는 꽃잎들은 관람객의 눈과 마음을 파고들며 그를 단숨에 인기작가 대열에 올려 놓았다. 2006년 가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갤러리3)를 비롯해 시카고(샌트화랑), 워싱턴(DC갤러리)에서 차례로 순회전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08년 일본 도쿄 기쿠다갤러리의 초대전에서는 출품작 20여점이 모두 팔려나갔다. 최근 현대백화점 설문조사에서 주부들이 가장 갖고 싶은 작품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씨는 “진달래꽃은 한국인의 내면 속에 깊이 배어든 향수와 정서를 자극한다”며 “미국과 일본 순회전에 찾아온 동포 관람객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고 전했다. ‘축복’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밥처럼 바구니에 수북이 담긴 진달래꽃, 징검다리 위에 놓인 진달래꽃 그림 등 50여점을 내보인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