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하락은 미 셰일업계에 ‘위장된 축복’이다.”

[주가 치솟고 유가는 급락] "셰일오일 차고 넘친다"…미 원유 재고량 80년 만에 최대
미국의 에너지 전문매체인 오일닷컴은 최근 유가 급락의 배경으로 미 셰일업계의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꼽으며 이렇게 표현했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감산을 거부하면서 원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셰일업계에 재앙을 안겼다고 떠들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이 매체는 오히려 유가 하락이 셰일업계의 구조조정을 통해 대형 업체의 설비 가동률을 높여 원가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됐다고 분석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도 지난해 비OPEC 국가들의 하루 평균 원유 생산량이 전년 대비 190만배럴 증가했는데 이 중 110만배럴은 미국의 증가분이라며 미국 내 시추설비 감소에도 불구하고 원유 생산량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업계 전문가는 “미국 내 상위 16개 셰일업체가 전체 생산량의 82%를 담당하면서 전 세계 석유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원가 경쟁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또 “설비가동과 채굴기술 발달로 이전에는 시추 후 생산까지 9개월 걸렸지만 지금은 30일 이내에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오일닷컴은 “하나의 칩에 들어가는 반도체 숫자가 2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무어의 법칙’이 셰일업계에도 적용된다”며 “일례로 미국 최대 셰일유전지대 중 하나인 텍사스 이글포드의 경우 2008년에 비해 생산성이 18배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주 미국 내 원유 재고량이 80년 만에 최대로 늘어난 것과 관련, “유가 하락과 설비 감소에도 불구, 미국의 원유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향후 유가예측의 새로운 방정식이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생산량 증가 외에 이란의 핵협상 타결 가능성도 국제 원유시장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이란이 미국과 핵 개발 프로그램 중지에 합의할 경우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고 석유 수출도 재개될 전망이다. 미 경제전문채널인 CNBC는 “월가가 유가 하락을 점치는 5가지 이유 중 하나가 이란의 핵협상 타결”이라며 “규제가 풀리면 이란은 하루 평균 80만배럴 이상을 수출 물량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18일 나오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도 유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다. 원유가 미 달러화로 거래되기 때문에 FOMC가 기준금리 인상 시기와 관련해 어떤 언급을 하느냐에 따라 유가 움직임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해 OPEC의 주축 회원국인 중동 산유국들은 여전히 올해 말 유가가 반등할 것으로 보고 있다. OPEC은 1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시차를 두고 미 셰일업계의 설비 감소에 따른 생산량 축소가 가시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올해 전 세계 원유수요가 하루 평균 2920만배럴로 증가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유지했다.

이에 따라 오는 6월로 예정된 OPEC 회의에서 사우디가 감산에 나서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이브라힘 알무하나 사우디 석유장관 자문관은 NYT에 “우리는 장기적 관점에서 시장을 바라보고 있다”며 “단기간 급락한 유가에 무릎을 꿇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