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앤더슨 3D로보틱스 CEO, 전문잡지 편집장 출신 언론인…'공짜경제학' 개념 사업에 접목
“기업이 자체적으로 혁신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평범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혁신을 만들고 있다.”

많은 기업이 기술 개발을 통한 이윤을 추구한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지는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소송에서 알 수 있듯이 독점적 기술력과 폐쇄적인 정보는 기업의 일반적인 경영전략이다. 하지만 정보의 공유와 개방이 혁신의 근원이라고 외치는 기업가가 있다. 세계적인 드론(무인비행체) 생산업체인 3D 로보틱스의 창업자인 크리스 앤더슨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개방된 기술과 정보를 공유하는 혁신 생태계에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긴다고 말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아이디어를 모으고 최선의 방법을 함께 찾아내면 성공적인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앤더슨 CEO는 언제나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다. 그는 물리학에서 저널리즘으로 전공을 바꾸기도 했고, 연구원에서 전문잡지 편집장을 거처 드론업체 CEO로 직업을 바꿨다. 앤더슨 CEO는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UC버클리에서 양자역학과 과학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특정 분야의 연구원 생활보다는 다양한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언론인이 자신의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로스알라모스 국립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안정된 생활을 정리하고 변화를 택했다.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분야인 경제 전문지 이코노미스트에서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이코노미스트에서 미국·아시아 경제경영 담당 편집자로 일한 시간은 앤더슨에게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관점을 얻는 값진 경험이 됐다. 그는 “이코노미스트에서의 편집자 경험은 이후 나의 ‘롱테일(Long Tail) 경제학’과 ‘공짜경제학(Freeconomics)’의 기본이 됐다”고 회상했다. 세계적 과학저널인 네이처와 사이언스의 편집자를 거쳐 정보기술(IT) 전문지 와이어드(Wired)의 편집장으로 2001년부터 12년간 활동했다.

기존의 경영 상식을 무너뜨리다

앤더슨 CEO는 와이어드 편집장 생활을 하는 동안 경영 상식들을 계속 파괴했다. ‘조직의 상위 20%가 생산물의 80%를 만들어 낸다’는 파레토 법칙에 반해 ‘80%의 평범한 다수가 20%의 핵심 소수보다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롱테일 경제학’을 처음 주장했다. 이제는 마케팅 분야에서 상식이 된 ‘공짜경제학’ 개념을 최초로 제시하기도 했다. 공짜경제란 유료 제품을 무료, 혹은 매우 싼 가격에 제공하는 대신 시장의 관심과 이에 따른 명성과 다수의 사용자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경제 현상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은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세계 곳곳에서 강연 요청이 쏟아졌고《롱테일 경제학》《공짜 경제학》《메이커스》등 그의 저서는 출간만 되면 큰 주목을 받았다. 그 결과 앤더슨 CEO는 2007년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특허는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

언론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다시 한 번 변신을 한다. 개방을 통한 혁신이라는 신념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다. 그는 공짜경제학에 입각한 아이디어를 직접 사업에 접목했다.

그는 2009년 ‘DIY 드론 닷컴’과 3D 로보틱스를 설립했다. DIY 드론 닷컴에서는 사람들이 손수 제작한 다양한 드론들을 구경할 수 있고, 위성위치정보시스템(GPS) 같은 요소 부품이나 드론 제작 장비 등을 판매해 드론 제작을 돕고 있다. DIY 드론 닷컴은 설립 5년 만에 개인 드론 제작자 등 5만여명의 회원을 거느린 세계 최대 드론 아이디어 뱅크로 성장했다.

3D 로보틱스의 드론 역시 개방형 모델을 통해 만들어졌다. 아이리스(IRIS)는 오픈소스 기반의 컴퓨터 플랫폼인 ‘아두이노(Arduino)’를 바탕으로 개발됐다. 창립 5년 만에 3D 로보틱스는 아직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드론이라는 사업 영역에서 500만달러가 넘는 수익과 세계 2만8000명의 소비자를 기록할 만큼의 성공을 거뒀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파운드리 그룹 등 벤처투자자들은 3D 로보틱스에 3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앤더슨 CEO는 “전문가가 아닌 내가 무인비행체 회사 CEO가 된 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이디어와 기술을 바탕으로 최상의 기술을 찾아내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개방형 혁신은 평범한 사람들도 누구나 참여해 아이디어를 상용화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앤더슨 CEO는 기술 독점이 정보의 공유와 개방형 혁신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지식재산권 제도에 반대한다. 그는 “특허는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며 “지식재산권으로 기술을 보호하면서 제품을 파는 것은 옛날 모델”이라고 말했다.

3D 프린터가 1인 제조업 시대 이끌 것


앤더슨 CEO의 눈은 미래에 일어날 변화를 향하고 있다. 그는 3D 프린터 기술의 발달로 인한 ‘1인 제조업 시대’의 도래를 예측한다. 1인 제조업 시대는 컴퓨터에 3D 프린터를 연결하고 버튼만 누르면 화면에 있던 디자인을 똑같이 그대로 만들 수 있는 시대를 의미한다.

인터넷에 있는 수많은 공짜 지식을 활용해 제품을 설계하고 시제품을 집에서 3D프린터로 인쇄한 뒤 중국이나 인도의 제조업체에서 소량 제품을 생산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판매는 이베이 등 전자상거래 업체를 통하면 세계 시장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따라서 “기존의 대기업들도 살아남으려면 뛰어난 개인 기업가들과 개방형 혁신 생태계를 통해 협력해 제품을 혁신해야 한다”고 앤더슨 CEO는 말한다.

그는 1인 제조업 시대에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각종 부품 산업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값싼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야 많은 개인 기업가가 창업에 나서기 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3D 로보틱스를 창업해 드론을 싼값에 만들 수 있는 것도 성능 좋고 값싼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저렴한 부품이 창업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