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괴담사회에 켜진 경고등
지난 연말엔 ‘철도 괴담’이 전국을 강타하더니, 새해 벽두엔 ‘의료민영화 괴담’이 한국 사회를 흔들었다. ‘의료 민영화가 시작되면 3000~4000원 하는 감기약이 3만~4만원으로 폭등하고 맹장수술 비용이 1500만원까지 오를 것’이란 괴담이 초등학생 휴대폰에까지 전달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작년 말 ‘철도공사가 민영화되면 지하철 요금이 960원에서 5000원으로 급등할 것’이란, 말도 안되는 얘기도 경험했다. 이들 괴담 탓인지 요즘 들어 국민 노릇하기도 정말 쉽지 않다는 탄식까지 들려온다.

‘괴담(怪談)’은 국어사전에서 ‘괴상한 이야기, 비슷한 말은 환담(幻談)’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뜻풀이 그대로 괴담은 괴변(怪變)이요,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괴담의 내용과 유포 과정, 그리고 수용 태도에는 한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이 가감 없이 투영되고 있다.

괴담은 항상 과장(誇張)된 목소리를 담는다.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을 일단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외치고 본다. 괴담 내용이 진실과 동떨어질수록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주장이 더욱 위력을 발휘하고, 현실을 호도할수록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이 판을 치는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괴담의 가장(假裝) 정도는 그야말로 수준급이다. 괴담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정의로움의 기치를 앞세우고 등장한다. 하지만 괴담의 정체는 국가 권력을 향한 무한대의 불신을 표현하는 것이 주목적이요, 그 어떤 형태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겠다며 박탈감을 표출하는 것이 숨은 의도인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갖춘 전문가의 권위도, 사회비판 및 권력남용 감시기능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중매체의 권위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합법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가의 권위까지도 손상시킨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괴담의 불합리함을 검증하고, 부당함을 비판하며, 불건강함을 교정할 수 있는 사회적 권위의 주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진정 한국 사회에 켜진 경고등이 아니겠는가.

정보기술(IT) 산업을 주도하는 나라답게 괴담의 유포 속도가 가속화되고 있음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전의 입소문이나 ‘~카더라’식의 통신급 괴담은 제한된 사회적 관계망을 타고 완만한 속도로 전파되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의 ‘넷소문’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괴담은 촘촘히 깔린 정보통신망을 타고 초등학생까지 아우르며 빛의 속도로 전파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덕분에 한국 사회에선 괴담 자체의 심각성보다 괴담 수용태도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괴담의 폐해가 더욱 심각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단 괴담이 등장하면 진위 여부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신 괴담의 동조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때부터 과도한 이분법에 따라 ‘내 편=옳음’, ‘네 편=틀림’, ‘우리=정의로움’, ‘그들=부정의함’으로 정죄하면서, 너나없이 분노와 불안, 적대감과 좌절감을 여과 없이 분출하곤 한다.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습관적 기억상실에 빠지는 것 또한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상호 신뢰를 기반으로 공공의 선(善)을 구축해 나갈 수 있는 사회자본의 양과 질이 선진사회를 가늠하는 기준일진대, 불신을 자양분 삼아 집단이기주의를 살포하는 괴담이 빈번히 출몰하는 한 한국 사회의 선진화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의 아킬레스건이라 해도 좋을 괴담, 그 폐해의 위험성이 지대한 만큼 재발 방지책 마련은 시급하다. 만병통치약은 없을 터이지만 인터넷 실명제 도입, 괴담 유포자 처벌법 강화, 성숙한 시민의식 교육 등 괴담을 줄일 수 있는 최소한의 대책이라도 세워 놓아야 되지 않겠나.

함인희 < 이화여대 사회학 교수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