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LED 소재 키우는 제일모직 > 제일모직이 소재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 9월 인수한 독일 노바엘이디. 독일 드레스덴시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를 검사하고 있다. 제일모직 제공
< OLED 소재 키우는 제일모직 > 제일모직이 소재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 9월 인수한 독일 노바엘이디. 독일 드레스덴시 연구실에서 한 연구원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를 검사하고 있다. 제일모직 제공
지난달 5일 경기 수원에 개관한 삼성 전자소재연구단지.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의 42만㎡ 부지에 들어선 이 건물에서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정밀화학 제일모직 등에 소속된 연구원 2000여명이 미래 소재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삼성은 이 연구단지를 중심으로 그룹의 미래를 책임질 전자소재 사업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국내 주요 기업들도 소재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소재산업 투자에 나서고 있다. 독일 일본 등에 비해 출발은 늦었지만 집중적인 투자와 축적된 기술력으로 글로벌 경쟁사들을 따라잡기 위해 전력 질주 중이다. 디스플레이 소재와 친환경 플라스틱, 고기능 합성섬유 등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LG화학의 절치부심

충북 청원의 LG화학 오창공장. 3D TV용 필름패턴편광(FPR) 안경에 사용되는 광학필름을 만드는 곳이다. 2010년 이 기술을 자체 개발한 LG화학은 FPR 3D TV용 광학필름 세계 시장의 85%를 차지할 정도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LG화학이 FPR 필름을 선보였을 무렵 3D TV 시장은 TV와 안경이 전자 신호를 주고받으며 3D를 구현하는 셔터글라스(SG) 방식이 주류였다. LG화학은 FPR 필름 개발 계획을 세웠다. 이 방식을 적용한 3D TV는 화면 깜빡거림이 적어 눈이 편하고 안경에도 별도의 장치를 부착할 필요가 없어서다. 회사 관계자는 “FPR은 고속으로 이동하는 광학필름에 마이크로 단위의 편광패턴을 균일한 간격으로 새기는 고난도 작업이 필요한 소재”라며 “소재업체가 새로운 기술로 완제품 시장을 바꾸겠다는 목표로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이 FPR 필름으로 소재를 혁신하자 완제품 시장의 판도도 달라졌다. LG전자 외에 글로벌 TV제조업체인 필립스, 비지오 등과 중국 업체인 하이얼, 하이센스, 창훙, TCL 등이 FPR 3D TV를 연이어 내놨다. 지난해 4분기 세계 FPR 3D TV 패널 출하량은 785만대를 기록해 718만대를 달성한 SG 방식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이 회사는 일본 기업들이 1990년대 말부터 10년가량 장악했던 액정표시장치(LCD)용 편광판 시장도 뚫었다. LG화학이 편광판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삼고 대규모 투자와 연구 개발에 나선 때는 1997년. 당시 연평균 30% 이상 성장하던 LCD 시장과 맞물려 편광판 수요도 급증할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사업 초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일본 업체에 기술 이전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LG화학이 2000년 상반기에 독자기술로 편광판을 개발하자 일본 경쟁사들은 가격을 20% 이상 낮췄다. 이 회사는 신기술을 적용하고 제조 원가를 낮추는 방식으로 스미토모와 니토덴코를 차례로 추월해 2008년 LCD 편광판 시장에서 세계 1위에 올랐다.

[소재 강국으로 가는 길] 기술이전 거절한 日에 '보란듯이'…LG화학 편광판 '세계 제패'

○주요 기업들 소재사업 투자 확대

삼성 SK LG 등 주요 그룹은 소재사업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 삼성은 지난 8월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을 설립하고 10년간 총 1조5000억원을 소재기술, 기초과학,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등에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은 희토류를 사용하지 않고 고효율의 빛을 낼 수 있는 소재를 개발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사업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삼성이 소재 전문기업으로 키우고 있는 제일모직은 지난 10월 독일 OLED 소재회사인 노바엘이디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OLED, 2차전지용 분리막, 편광필름 등에 3년간 총 1조8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SK도 계열사별로 소재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정보전자소재 분야를 선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2차전지 핵심 소재인 리튬이온분리막을 자체 개발한 이 회사는 국내 점유율 1위, 세계 3위(19%)를 차지하고 있다. SK케미칼은 염소를 사용하지 않은 친환경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페닐렌 설파이드(PPS)를 개발했다.

이 밖에 효성은 지난달 공업용 플라스틱 소재인 폴리케톤을 처음으로 상용화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소재산업이 독일 등 선발주자를 넘어서려면 장기적인 투자와 지원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유회준 KAIST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소재산업을 부품, 완제품 등과 연계해 꾸준하게 연구하는 분위기가 산업계에 조성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양성진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독일 머크가 액정을 개발한 것은 100년 전이지만 이 사업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며 “소재산업은 길게 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편광판

두께가 머리카락 2~3개 정도 굵기인 0.3㎜의 초박막 필름으로 일정한 방향의 빛만 통과시켜 화상을 구현하는 액정표시장치(LCD) 핵심 소재다.

배석준 기자 eulius@hankyung.com

♧ DB인사이트-이슈 DB 바로가기 : 소재 강국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