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신예작가 에론 영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번 아웃 페인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석범 기자
미국의 신예작가 에론 영이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자신의 ‘번 아웃 페인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석범 기자
커다란 화면에 추상적인 곡선 무늬가 얽히고설켜 캔버스에 페인트를 쏟아부었던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니 이 어지러운 무늬는 물감이나 페인트가 아니다. 오토바이의 ‘번 아웃 마크(스키드 마크)’다. 빠르게 달리다가 급정거할 때 고무바퀴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면서 남긴 자국이다. 폴록의 추상화를 연상시키지만 전혀 다른 방식의 액션페인팅인 셈이다.

‘무제’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미국의 신예작가 에론 영이 다음달 15일까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 ‘로컬즈(Locals)’에 내놓은 작품 중 하나다. 그는 1950~60년대 미국 미술을 주도했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니멀리즘 등 주류 미술사의 경향을 독특한 방식으로 소화해 주목을 끌고 있다.

영의 작품은 온통 남성적 에너지로 가득하다. ‘번 아웃 페인팅’은 물론 빈티지 클래식 스포츠카의 스포일러를 4개씩 나란히 배치한 작품 역시 남성 스포츠인 자동차 경주의 역동적인 힘을 떠올리게 한다. 얼핏 보기에 직사각형의 건자재를 규칙적으로 배열해 작가의 주관적 표현을 배제한 도널드 저드의 미니멀리즘 조각에서 영향받은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을 스포일러로 대체했다는 점에서 미니멀리즘과는 완전히 다르다.

스포일러는 고급 스포츠카와 과격한 스포츠에 열광하는 미국 문화의 마초적 특징을 대표하는 오브제의 하나다. 영은 이를 통해 미니멀리즘이라는 제도화된 미술 트렌드와 미국 문화의 상투성에 통렬한 어퍼컷을 날린다.

이런 저항정신은 비디오 작품 ‘저항하는 도즈1955’에서도 드러난다. 로스앤젤레스 근교 사막에서 촬영한 이 영상물은 자동차 충돌사고로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스타 제임스 딘의 차와 충돌했던 동종의 자동차가 공중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작가는 “제임스 딘의 반항정신과 자동차의 격렬한 파워를 중첩시켜 관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개인전 제목을 ‘지역민’ 혹은 ‘토박이’라는 뜻의 ‘로컬즈’로 명명한 것도 제도권 예술에 대한 작가의 저항의식을 드러내는 한편 미국 문화의 정체성과 자본주의적 상투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영은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를 나와 예일대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그는 2006년 휘트니비엔날레에 참여했다. (02)735-8449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