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형구 씨의 ‘오드리 햅번’.
강형구 씨의 ‘오드리 햅번’.
사람의 모습을 포착하는 방식은 화가마다 다르다. 어떤 작가는 앞모습에 집착하고, 또 어떤 작가는 뒷모습에 매달린다. 그것은 곧 화가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다.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에서 8일 막을 올리는 중견작가 강형구 씨(59)의 개인전 ‘각인’과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오는 24일까지 열리는 정명조 씨의 ‘아름다움의 역설’전은 이런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안겨주는 흥미로운 전시다.

홍콩 크리스티 등 해외 경매에서 높은 낙찰가를 기록해 해외에서 더 유명한 강씨는 과거와 현재의 역사적 인물을 대형 캔버스나 알루미늄판에 그린 초상화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초상화는 겉보기에는 친숙한 인물들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한 것 같지만 표정과 각도, 색채를 조율하고 상상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역사적, 대중적 아이콘을 통해 시대성을 읽어내는 것. 특히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 작품이 많은 것은 “관객과의 교감을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성찰의 기회를 갖게끔 하려는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정명조 씨의 ‘아름다운 역설’.
정명조 씨의 ‘아름다운 역설’.
근작 13점과 드로잉 30점을 내놓은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조선후기 화가 윤두서의 ‘자화상’. 작은 한지에 선묘로 그려진 원래의 윤두서상은 큰 알루미늄판 위의 대형 초상화로 탈바꿈했다. “터럭 한 올까지 정확히 묘사한다”는 전통 초상화의 창작원리를 따르면서도 얼굴은 마치 조각 같은 입체감으로 다가온다. 노려보는 표정의 붉은색 모노크롬 자화상은 자신을 경계하기 위한 옐로카드라고 한다. 전시 12월20일까지. (031)761-0137

강씨가 ‘드러냄의 미학’을 나타낸 것과 반대로 정명조 씨는 ‘감춤의 미학’을 펼치고 있다. 정씨는 그동안 한복을 단아하게 차려입은 조선시대 여인의 뒷모습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해 조선시대 여인들의 내밀한 아름다움을 묘사해 왔다. 앞모습이 여인의 표피적이고 물질적 특성을 보여주는 데 비해 뒷모습은 외형적인 아름다움보다는 내적이고 본질적인 아름다움에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

대형 작품 12점이 출품된 이번 전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종전의 작품들이 여인을 특정한 공간이나 한자로 장식된 서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묘사한 데 비해 사군자 등 시각 이미지를 부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비문화를 표상하는 사군자와 뒤돌아선 여인을 마주 서게 함으로써 남성 중심적 미감과 여성미의 강렬한 대비를 촉발한다. 전시 24일까지.(02)725-1020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