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아빠의 무관심'과 '엄마의 정보력' 사이
드디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한 달 전부터 전국의 아파트 단지엔 ‘수능 대비 소음 금지’ 공문이 나붙었을 테고, 수능 당일의 영어 듣기평가 시간엔 비행기 이착륙마저 잠시 중단될 예정이다. 수험생 입장에선 자신의 미래를 향해 주사위를 던지는 중차대한 시험이요, 부모 입장에선 그동안의 투자가 헛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한 날인 만큼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세울밖에.

자녀의 성공을 위한 세 가지 힘(力)은 사교육을 감당할 본인의 체력, 엄마의 정보력, 조부모의 경제력이란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곤 했는데, 뒤에 두 가지 조건이 추가됐다. 하나는 아빠의 무관심이요, 다른 하나는 동생의 희생이란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정색을 하는 건 더욱 우스꽝스러운 일이지만, 아빠의 무관심이 자녀의 성공 요건으로 지목되는 건 정말 씁쓸한 일이다. 억지를 부리자면 전일제 엄마의 음모(?)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니 말이다.

실제로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조사 자료에 의하면, 일단은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가장 큰 설명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난다. 사회계층구조가 공고화되면 교육 수준은 ‘성취 지위’의 성격보다 ‘귀속 지위’의 성격이 강화됨을 입증하는 결과인 셈이다.

단 사회경제적 지위가 동일한 상황에서는 부모자녀 관계가 민주적이고 친밀할수록, 더불어 부모가 동시에 자녀교육에 깊은 관심을 갖고 열심히 참여할수록 자녀의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의 많고 적음과 자녀의 학업 성취도 간에는 상관관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수험생 가족에서 아빠의 소외가 빈번히 관찰되고 있음은 진정 유감이다. 일전에 수험생 가족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한 결과 수험생 가족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대다수 아빠들의 역할은 현금인출기 기능으로 추락하고, 대신 집안의 자원을 동원하여 수험생 자녀를 독려하고 사교육을 진두지휘하는 총 매니저 역할은 엄마에게 집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기 엄마의 스트레스가 가장 고조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엄마의 파워가 가장 극대화되는 역설이 밝혀지기도 했다.

문제는 ‘엄마의 정보력’이다. 엄마의 정보력 수준은 비유컨대 청년실업 세대의 취업 정보력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계 기업의 인사 담당자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주제로 특강을 실시한 자리에서 요즘 청년 구직자들 수준을 일컬어, “마치 바둑 18급들이 모여 1단이 되기 위한 정보를 교환하는 모양새”라고 혹평한 적이 있다.

엄마의 정보력에 대해서도 동일한 비유가 가능할 것 같다. 엄마의 정보력은 주로 수능 적중률이 높은 족집게 과외선생이 누구인지, 일명 SKY대 합격률이 높은 학원이 어디인지, 자녀의 내신과 수능 점수로 어느 대학 무슨 전형에 합격 가능한지 정도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우선 어느 대학이라도 붙고 보자’는 전략은 가파르게 상승 중인 청년실업률과 날로 치열해져 가는 인재전쟁이 동시에 진행되는 요즘 시대엔 근시안적 사고임이 분명하다. 의사, 변호사, 회계사 등 높은 수입을 자랑하는 직업이나 공무원, 교사 등 안정성이 보장되는 직업을 자녀들에게 강권하는 것 역시 현명한 전략은 아니다.

그래도 아빠들은 저마다의 사회생활 경험을 통해 정작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은 무엇인지, 이곳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름의 필살기는 어떻게 연마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무한경쟁 시대의 파고를 넘어가 본 경험도 있고 급격한 환경변화의 의미도 체감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아빠의 무관심은 직무유기로 연결되고, 엄마의 정보력은 과잉모성의 폐해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이제 아빠의 무관심을 적절한 관심으로 전환하고, 엄마의 정보력을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야말로 자녀의 성공을 위한 내실 있는 전략일 게다.

함인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hih@ew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