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창의성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 잡는 법
미국 MIT 슬로언경영대학원 연수시절 일이다. 평소 이공계통에서만 공부하고 일했던 나는 경영학도 공부하고 싶었다. 특히 기술조직의 관리방법론은 늘 나에게 큰 숙제였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연구조직을 이끌 효율적인 경영·관리법을 배울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단기강좌 중 ‘기술조직 관리론’이라는 강의가 있었다. 일반 조직은 대부분 생산성만 높이면 되지만 연구소와 같은 기술조직은 창의성과 생산성 모두를 높여야 성공적인 기술조직이 되는데 어떻게 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이 강좌의 개요였다. MIT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합동으로 여는 강좌였는데, 가을학기 강의는 이미 등록이 끝나 봄학기 강의를 자비를 들여 스위스까지 찾아가 들었다.

단 1주일짜리 강의였지만 내가 안고 있던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정부출연연구소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오늘보다 더 나은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유익한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이다. 따라서 창의적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것과 기술사업화를 통해 연구 생산성을 높이는 것, 어느 쪽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얄밉게도 이 두 마리 토끼는 대개 반대 방향으로 도망간다. 생산성을 좇다보면 조직이 경직돼 창의성이 떨어지고, 창의성을 좇으면 조직이 느슨해져 생산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담당 교수는 창의성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 비법을 일러줬다. 그 방법은 간단했다. 창의성은 조직문화로 이끌어 올리고, 생산성은 규율로 향상시킨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남들과 달리 생각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일을 즐겨야 한다.

첫째 ‘남들과 달리 생각하라’는 것은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제일 좋아했던 말이다. 애플사를 방문했을 때 연구실, 식당 등 다양한 곳에 다양한 디자인의 ‘Think different’ 포스터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발상의 전환이란 조직문화가 애플사 혁신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느꼈다.

둘째 ‘남의 이야기를 잘 들으라’는 것은 반대 의견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일리를 찾을 수 있고 이런 일리를 내 생각과 합치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일을 즐기라’는 것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을 지능적으로 하는 것이고, 일을 지능적으로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을 즐기는 것이라는 의미에서다.

반면에 생산성을 높이는 규율은 일의 절차를 잘 지키고, 시간을 엄수하고,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일의 절차를 잘 지키라’는 것은 모든 일에는 정해진 절차가 있고, 그 정해진 절차만 잘 지켜도 생산성은 증가한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을 잘 지키라’는 것은 일은 대부분 팀별로 처리되는 것인데 만약 팀원이 열 명인 팀에서 팀원 한 사람이 개발일정을 1주일 지연시키면 10주가 지연되는 것이고, 회의 시간에 10분 늦게 나타나면 100분이 늦어지는 것과 같으므로 철저히 시간을 지킴으로써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맡은 일에 책임을 지라’는 것은 각자 자기가 맡은 일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완수한다는 철저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일을 수행할 때 팀 전체의 생산성은 놀라울 정도로 증대된다는 것이다. 만약 이 세 가지 문화와 세 가지 규율이 양립할 수 없다면, 창의성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없을 것이지만, 양립할 수 있다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창의성과 생산성의 조화는 다분히 기술조직에만 국한된 사항은 아닐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화롭게 양립시키느냐가 혁신을 추구하는 모든 조직의 성패를 좌우한다.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경제도 마찬가지다. 얼핏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창의성과 생산성의 조화법칙을 꾸준히 실천해 나간다면, 국가 경제를 이끌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생산성을 향상시켜 우리의 꿈인 창조경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