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이건희 삼성 회장(사진)이 첫 오찬을 디자인 핵심 인력들과 함께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4월 정기 출근을 시작한 이후 점심 때 관심 있는 분야의 임직원을 만나는 ‘오찬 경영’을 해오고 있다.

6일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은 윤부근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담당 사장과 디자인경영센터 임원, 각 계열사 디자인 담당 임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얘기를 들었다. 윤 사장은 1000여명이 일하는 삼성전자 디자인경영센터장을 겸임하고 있다. 이 회장은 이 자리에서 “21세기 기업경영에선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 창조력에서 승부가 난다”며 디자인 분야 우수 인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더 뛰어달라고 윤 사장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은 이 회장이 강조해 온 핵심 가치의 하나다. 그는 2005년 밀라노에 사장단을 소집, 디자인 역량을 명품 수준으로 끌어올리라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했다. 최근 애플과의 특허소송에서 ‘둥근 모서리’ 등 아이폰 디자인을 베꼈다는 평결을 받으면서 ‘삼성만의 정체성을 가진 디자인’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디자인 우수 인력 확보를 위해 여러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우수 인력이 선호하는 서울에 디자인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1조2000억원을 투입, 우면동에 연구·개발(R&D)센터를 짓고 있다. 또 필기시험(삼성직무적성검사) 없이 면접만으로 채용하는 ‘창의 플러스 전형’을 도입했다.

오찬 경영은 이같이 특정 분야의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와 함께 소통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오찬을 통해 사장단과 임직원들을 매주 만나면서 직접적 의사소통이 많아지고, 의사결정도 빨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회장은 정기 출근 전엔 자택인 승지원에서 부정기적으로 보고를 받았다.

또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효과도 크다. 회장이 직접 큰 틀에서 신사업 구상, 인사, 현안 등을 챙기며 “안주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화·목요일에는 미래전략실 간부들이 한층 분주해진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