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비행기 타는 일이 익숙한 항공의 대중화 시대다. 그렇기에 공항은 지역주민들의 삶에 풍요로움을 더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국내엔 14개의 지방공항이 균형있게 분포돼 있다. 승객 증가로 혼잡한 공항을 확장하고, 이용객이 적은 공항은 수요를 창출해야 하는 것은 정부와 공항당국이 늘 당면하는 과제다. 실제 지방공항 중에는 승객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인 곳도 있는 반면, 규모 확장을 고려해야 할 정도로 성업 중인 곳도 있다. 부산권역의 김해공항과 제주공항이 후자에 속한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은 수년간 논란의 대상이 돼왔다. 그동안 공항 후보지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돼왔지만 당초 왜 신공항이 필요했는지에 대한 문제의 핵심은 간과되고 있다. 후보지를 놓고 경남과 경북 간의 지역갈등도 야기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는 치열한 시장경쟁 원리가 작용하는 곳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타당성 여부가 중요하다. 대선 정국에 접어들면서 또다시 지역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논란은 문제점과 해법을 원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동북아 허브공항 경쟁 치열…인천공항 키우는 게 더 급해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약속한 출발점으로 되돌아가 보자. 2002년 4월 김해공항으로 착륙하던 중국 민항기가 인근의 돛대산에 추락하는 대형사고가 났다. 곧바로 공항의 안전성이 제기됐다. 그해 대선 정국에서 신공항 건설은 노무현 후보의 지역공약이 됐다. 또 2020년대 중반에 이르면 수요 증가로 김해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보고서도 나왔다. 참여정부 들어 타당성을 검토했지만 추진되지는 않았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공약으로 발표하면서 동남권의 신공항 건설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대선 후보의 공약 발표는 김해공항의 안전성은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 늘어나는 여객 수요에 대한 기존 공항의 수용력은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 등 김해공항에 대한 검토는 뒷전으로 미뤘다.

대선 후보들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월 최종 후보지 선정단계에서 1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에 대한 경제적 불확실성과 현실적인 문제 등이 평가단 내부에서 제기되면서 결국 당초 계획은 백지화됐다. 사업 타당성에 대한 사려 깊은 정책 개발과정 없이 선거캠프에서 마련했던 대선 후보들의 공약이 가져온 결과였다.

동남권 신공항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대규모 신공항에 대한 미래 수요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경남의 가덕도든 경북의 밀양이든 새로운 대규모 국제공항이 건설되면, 동남권역의 항공 수요가 새로운 공항 한 곳으로 흡인될 것이라는 가정부터가 지나친 낙관이다. 접근성과 스케줄에 민감한 항공 수요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얘기다. 길목이 바뀌면 동네의 상권이 바뀌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사례를 보자.

강릉공항과 속초공항은 항공사들이 하루 5회 내지 7회 취항할 만큼 수요가 많았다. 그런데 신공항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불과 자동차로 30~40분대의 거리에 3000억원 규모로 양양국제공항을 개항하고 두 공항을 폐쇄했다. 하지만 두 공항을 드나들던 승객들의 유입은 예상과 달리 없었다. 배후도시들의 항공 수요가 수도권을 연결하는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육상 교통수단으로 옮겨 갔다.

무안국제공항 역시 인근의 광주공항을 대체하는 서해안 시대의 관문공항으로 건설이 추진됐다. 막상 2007년 개항하면서 드러난 현실은 비참했다. 공항을 바로 옆에 두려고 하는 광주와 무안 두 지자체의 욕심도 조정되지 못했다. 지금 두 공항은 문을 열었지만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울진엔 1200억원을 들인 민간비행장이 있다.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어 몇 년이나 개항을 미루다가 재작년 민간조종사 비행훈련원으로 용도변경됐다.

전국을 2시간대의 생활권으로 만든 KTX가 수도권으로 집중된 고속도로를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서 접근성에 민감한 고객들을 동남권역의 신공항으로 집객하는 일이 가능할까. 게다가 동남권역의 신공항이 개항될 경우 대구, 포항과 울산, 사천의 지방공항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도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지방공항 대부분 적자 못면해…김해공항 수용력 확대가 우선

둘째로 허브공항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다. 목적지가 어디든지 비행기를 갈아탈 수 있을 정도의 풍부한 장·단거리 노선과 각국의 주요도시를 연결하는 항공사들이 빈번하게 취항해야만 항공 수요가 집중된다. 이때 비로소 허브공항은 연결기능을 발휘한다. 동북아지역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서비스 세계 1위의 인천공항은 세계 180여개국 82개의 외국항공사가 매일 10만여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고 있지만, 환승객 비율은 20%를 밑돈다.

반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는 인구가 70만명도 채 안되는 작은 도시다. 그럼에도 세계 270개 도시를 연결하면서 환승률이 40%를 상회하는 대표적인 허브공항을 보유하고 있다. 허브공항이란 적어도 승객의 20% 이상이 중간기착지로 경유해야 제구실을 한다.

더욱이 동북아지역의 허브공항 경쟁이 치열한 현실에서 동남권에 또 다른 허브공항이 건설돼 수요가 분산된다면 인천공항의 경쟁력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항공정책 측면에서 심각히 고려해봐야 할 사항이다.

당초 동남권 신공항은 김해공항의 안전성과 수용력 부족에서 제기된 대안이었다. 따라서 공항의 안전성과 수용력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 일이었다. 당초 신공항 건설보다는 김해공항의 자연장애물인 신어산과 돛대산 문제 해결을 위한 항행안전시설 개선 방법과 장기적으로 공항 수용력을 키울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노력이 우선이었다. 지형적 여건이 유사한 홍콩의 첵랍콕공항처럼 인근지역 매립을 통한 공항 확장이 어렵다면 현재의 민군 겸용공항을 분리하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다.

김포와 김해, 제주공항 세 곳을 제외하고 모두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공항들 역시 건설 당시 제시되었던 타당성이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건설된 지방공항 대부분은 지역 출신 정치인의 영향력과 지역 민심을 겨냥한 포퓰리즘 때문에 실패했다.

10년 이상, 10조원 넘게 투입되는 국책사업은 개발단계에서는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긍정적일 것이다. 그러나 건설에 따르는 재원의 조달과 개항 이후 공항 운영에 따르는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온다.

허희영 < 한국항공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

△서울대 경영학 박사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 객원교수 △(사)한국항공경영학회 초대회장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