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님의 강아지요. 왕왕! 걷어 차일수록 꼬리를 흔들죠. 누렁이 개뼈다귀처럼 여기셔도 좋아요. 곁에만 두신다면….”

‘루’를 짝사랑하는 ‘익’이 천연덕스럽게 강아지 흉내를 내자 관객들이 자지러진다. 한두 번이 아니다. 극 곳곳에 숨어있는 웃음 요소들이 관객을 쥐락펴락하며 한바탕 신명 마당으로 끌어들인다.

극단 여행자의 연극 ‘한여름 밤의 꿈’(사진)은 원작자 셰익스피어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창의적이고 새롭다.

줄거리는 셰익스피어 원작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네 연인의 엇갈린 사랑, 도깨비의 실수로 넷의 사랑방정식이 얽히는 설정, 잠에서 깨어나면서 주인공의 갈등이 해소되는 점 등은 그대로다. 아테네의 요정들이 뒷산 도깨비로, 사랑의 비올라꽃은 은방울꽃으로 바뀐 정도다.

이 무대를 한국식으로 완성한 건 입에 착착 감기는 대사다. “어여쁜 여인네를 보면 허리춤 살랑, 엉덩이 살랑, 거시기 살랑. 이것이 돗가비 천성” “어허, 그놈 마누라 등쌀 무서워, 잔소리 무서워, 자고로 인간들 옛말에도 질풍노도라! 질주하는 남자의 바람기는 성난 파도와도 같다” 등의 해학 섞인 대사들은 셰익스피어의 한국적 변주를 성공시킨 일등공신이다.

한국의 소리로 무대를 채운 것도 주효했다. ‘둥둥 딴다다 둥둥 딴다다’ 공연이 시작되면 알록달록 분장한 도깨비들과 남녀 주인공들이 우리 전통 타악기에 맞춰 춤사위를 펼친다. 어깨가 절로 들썩여지고, 발바닥은 저도 모르게 흥겨운 가락에 박자를 맞추게 된다. 지난 6일에는 글린다 역을 맡은 배우 수지 매더스를 비롯한 뮤지컬 ‘위키드’ 팀원이 공연장을 찾았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호주 배우들이 함께 웃으며 박수를 칠 수 있었던 것도 이 시원한 한국의 소리 덕이다.

마당놀이처럼 뻥 뚫린 무대도 눈에 띈다. 도깨비들과 남녀 주인공들이 장면 장면 ‘인간 세트’가 돼 무대를 꽉 채운다. 고정된 구조물 대신 ‘그때그때 변하는’ 인간 세트로 무대를 채운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관객에게 말을 거는’ 극적 장치들도 곳곳에 도입됐다. 여자를 좋아하는 도깨비 가비가 객석을 쳐다보며 “오늘은 (예쁜 여자를 만나기) 글렀네”라고 툭 던져 폭소를 만들어내고, 다른 도깨비는 몰래 객석 안에 들어와 꽹과리를 치며 관객을 놀래킨다. 야광팔찌를 던지며 관객의 박수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2002년 초연 이후 세계 연극인의 주목을 받았다. 2006년 한국 연극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초청공연을 했고, 지난 4월에는 전 세계 37개국 대표 셰익스피어 공연이 모이는 ‘글로브 투 글로브’ 페스티벌에 초청됐다. 15~20일, 25일. 명동예술극장. 2만~5만원. 1644-2003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