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가 오늘부터 4년 임기를 시작한다. 갈등 폭력 파행으로 점철된 18대와는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지만 개원 전부터 성추행 논문표절 등 도덕성 시비와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져 나왔다. 권위는 바닥이요 원(院) 구성은 난항이다. 더 큰 문제는 대선을 앞둔 포퓰리즘 경쟁이 한층 가열되고 있는 점이다. 정치가 유권자에게 뇌물을 퍼주고 나라는 빚더미에 앉아 망해버린 그리스를 닮아가는 꼴이다.

여야가 한결같이 ‘복지 원조당(元祖黨)’을 자임하며 이른바 민생법안 숫자 늘리기 경쟁에 혈안이다. 새누리당은 ‘희망 사다리’ 12개 법안을 오늘 발의한다. 비정규직과 차별 철폐, 4대 중증질환 건강보험 100% 적용, 0~5세 보육·양육비 지원, 대형 유통업체의 중소도시 진입 5년간 금지 등이 골자다. 민주당도 7대 민생 의제와 관련해 20개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반값등록금, 무상보육·무상급식,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전·월세 상한제 도입 등이다. 이쯤 되면 법안 발의자를 확인하지 않고선 새누리당 것인지 민주당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돕자는 취지를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진정 약자를 도울 의지가 있다면 제도 도입에 따른 문제점과 부작용부터 철저히 점검하는 게 순서다. 새누리당의 1호 법안인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은 동시에 정규직 과보호 축소와 고령자 주부 등을 위한 다양한 근로형태를 허용하지 않고선 일자리만 줄일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내건 반값등록금은 대학진학률이 3년 새 10%포인트 떨어지고 고졸인재에 관심이 높아진 긍정적인 흐름을 뒤집자는 것이다. 고교 지원을 확대하고 대학 장학금을 늘리는 게 순리다. 전·월세 상한제는 과거 상가임대차보호법처럼 세입자들에게 더 큰 부담이 될 게 뻔하다.

10여년간 복지 확대와 성장률 저하로 국가재정에도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지난 1분기 통합재정수지는 11조3000억원 적자로 전년 동기보다 6조9000억원이나 악화됐다. 대통령이 언급한 균형재정은 물론이고 정치권의 퍼주기를 감당할 수준도 아니다. 정당들이 대선을 앞두고 무책임한 법안들을 통과시킬 때마다 국민에게는 청구서가 쌓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