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경기도 양평군 백안리 부근 국도 6호선에서 비포장길로 빠져 2.5㎞를 들어가자 숲 사이로 '백운테마파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양평군이 '수도권 제일의 테마공원'을 표방하며 지난해 6월 19만5000㎡ 부지에 85억원을 들여 산책로 등 1차 조성공사를 끝냈지만 1년 넘게 방치돼 있다. 입구 주변에는 변변한 안내판 하나 없이 '진입로 공사로 출입을 통제하오니 불편하시더라도 양지해 주시기 바란다'고 쓰인 현수막만 걸려 있다. 양평군은 내년 말까지 115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진입로와 주차장 등을 만들 예정이지만 입지여건이 처지고 테마도 불분명해 수익 창출이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리한 전시행정으로 지방자치단체의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 10 · 26 재 · 보선과 내년 4월 총선,12월 대선을 앞두고 선심성 개발사업도 쏟아질 전망이어서 가뜩이나 어려운 자치단체의 재정이 더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끝없이 이어지는 선심성 사업

보여주기식 전시행정과 표를 의식한 포퓰리즘 사업이 전국 각 지방자치단체에 만연하고 있다.

지리산 자락 산촌인 경남 산청군(인구 3만5000명)에는 건립이 완료됐거나 건립 중인 공원,관광지 등 문화기반 시설만 19곳이나 된다. 사업비는 전통한방휴양관광지 576억원,산청 한의학박물관 79억원,산약초타운 50억원 등 모두 1900억원.3000억원대인 산청군 1년 예산의 63.3%에 이른다. 수요를 무시한 무분별한 사업으로 산청박물관 등 상당수 시설이 관광객들에게 외면당해 가뜩이나 재정자립도가 14.6%에 불과한 군의 살림살이를 옥죄고 있다.

강원도 태백시가 국비와 지방비 200억원을 들여 소도동 13만㎡에 조성한 '태백체험공원'도 애물단지다. 광업촌의 역사를 보존하고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명분으로 건립됐으나 작년 하루 평균 입장객은 12명에 지나지 않았다. 태백시와 영월군 등 인근 지역에 세워졌거나 검토 중인 석탄 관련 박물관과 체험공원이 6곳이나 되는 점을 고려하지 않아서다.

울산시 중구청은 올해 초 태화강 십리대밭 축구장에 설치한 조명탑을 켜보지도 못하고 철거했다. 체육진흥기금 3억5000만원을 지원받아 조명탑 6기를 설치했지만 조명타워가 국내 최대의 백로와 까마귀 서식지로 꼽히는 태화강 삼호대숲에서 불과 170m 떨어져 있는 데다 야간 축구 경기 때 발생하는 소음이 철새의 서식환경을 해친다는 지적 때문이었다.

◆재정 악화 주범,지방 공기업

지방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은 지자체의 재정난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달 초 현재 16개 광역자치단체와 228개 기초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지방 공기업은 373개에 이른다. 이 중 공무원 조직인 지방 직영 공기업을 제외한 137개 공사 · 공단들의 작년 부채는 46조4744억원으로 전체 지방 부채(75조4677억원)의 61.6%를 차지한다. 지자체들이 까다로운 중앙정부의 투 · 융자 심사 등을 피하기 위해 간섭을 덜 받는 지방 공기업에 민원사업을 전가했기 때문이다.

인천시 산하 인천교통공사가 지난해 6월 준공한 관광용 모노레일(은하모노레일)은 1100억원이 넘는 세금을 허비했다는 지적이다. 853억원을 투입했지만 부실 시공과 안전성 논란으로 준공된 지 1년이 넘도록 운행을 못한 은하모노레일은 7~18m 높이의 철 구조물이 흉물스럽게 방치된 채 군데군데 녹슬어 있다. 이를 철거하려면 또 250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 판이다.

김종진 전주대 금융보험부동산학과 교수는 "지자체들이 중앙정부의 감시를 벗어나기 위해 선심성 사업 시행자로 지방 공기업을 이용하면서 지방 재정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지방 공기업의 재정건전성과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가 감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지자체 재정자립도

지방자치단체 재정수입에서 중앙정부가 주는 교부금을 제외한 자체 수입(지방세+세외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재정자립도가 높을수록 지자체의 살림살이가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양평=정태웅/인천=김인완/울산=하인식

태백=김덕용/산청=김태현 기자 redae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