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으로 넘어올 때 진 브로커 빚을 갚기엔 월급이 너무 부족했어요. 하루에 5만원 더 벌어보겠다고 공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게 화근이었죠." 2008년 한국 땅을 밟은 새터민 장경실 씨(46)는 한동안 '괜히 남한에 와서 신세만 망쳤다'는 후회로 밤잠을 설쳤다. 브로커 빚 1000여만원을 갚기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공장에서 작업 도중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면서 손가락 3개를 잃기도 했다. 그랬던 그의 삶은 지난해 9월 인천 송도에 있는 청소전문업체 송도에스이에 입사하면서 180도로 바뀌었다. 장씨는 "손가락 사고를 당한 이후 식당에서조차 받아주지 않아 살길이 막막했는데,이젠 '청소 전문가' 소리까지 듣는 직장인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

◆'이방인'에서'전문인력'으로

포스코가 지난해 4월 설립한 송도에스이는 인천 지역 포스코패밀리 사옥의 청소와 주차 관리를 담당하는 업체다. 저소득층,고령자,새터민 등 취업이 어려운 이웃에 더 많은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제공하자는 게 이 회사의 설립 취지다.

송도에스이의 전 직원 127명 가운데 117명이 취약계층이다. 이 중 34명이 장씨와 같은 새터민이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새터민이 일하고 있다. 보통 청소업계 종사자는 1~2년 단위 계약직이 대부분이지만 이 회사는 직원을 100%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포스코가 새터민의 자립에 팔을 걷어붙인 이유는 새터민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반면,한국사회에 제대로 적응하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판단에서다. 장병일 송도에스이 상무는 "현재 인천에 거주하는 새터민 1600여명 가운데 직장에 다니는 사람은 약 30% 수준"이라며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는 새터민이 늘면서 이미 사회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새터민 김영희 씨(47) 역시 송도에스이를 통해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찾았다. '이방인'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해 하루는 식당,하루는 가사도우미 등 한 달 내내 다른 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는 "열 살배기 아들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언제 올지 모르는 엄마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생각에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했다"며 "송도에스이에 들어온 후엔 오후 3~4시에 일정하게 퇴근해 아이가 오기 전에 밥도 해놓고 공부도 가르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송도에스이는 이들에게 단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쟁력을 갖춘 전문인력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매월 1회 2주 코스로 운영하는 '청소전문교육과정'이 대표적이다.

국내 최대 규모인 302㎡의 실습교육장과 40여종의 청소장비,이론교육장을 활용해 이론 · 실습 · 일체험 등 체계적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김씨는 "처음에는 청소하는 데 무슨 기술이 필요하겠느냐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장비나 약품 사용법을 익히고 난 후 일의 효율도 높아지고 전문가가 된 듯한 느낌에 이제는 서로 들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청소할 때 사용하는 '누수' 같은 한자어를 비롯해 '왁스' 등 영어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새터민들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언어교육도 실시한다. 금융과 예절교육 등 청소와 상관은 없지만 새터민들이 한국사회에 더 잘 적응하도록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장씨는 "새터민들은 직장을 구해도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잘리거나 스스로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며 "이곳에선 지속적인 교육으로 자신이 발전하고 있다는 만족감이 높아 지난해 함께 취직한 새터민 전원이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취약계층 일자리 900개 늘어

포스코는 송도에스이를 포함해 전국에 총 4개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1월 자회사형 장애인 표준사업장인 포스위드를 시작으로 2009년 12월 포스에코하우징을,지난해 1월 포스플레이트를 각각 설립했다. 운영 중인 4개의 사회적 기업을 통해 내년까지 취약계층 일자리를 총 890개 만들겠다는 목표다.

송도에스이의 지난해 매출은 10억원.아직 시작 단계라 이익은 크게 나지 않지만 영세민들의 아파트 청소,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구매하는 '착한 구매' 등을 통해 취약계층을 돕고 있다.

장 상무는 "적극적으로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올해 3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며 "이윤이 생기면 취약계층을 추가 고용하고 착한 구매를 확대하는 등 전액을 사회적 목적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송도에스이는 취약계층 고용 규모를 올해 150명,내년에는 170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장 상무는 "송도에스이가 더 많은 새터민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청소도 하나의 전문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라고 강조했다. 송도에스이는 미화원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이미 직원들의 호칭도 '여사님'과 '선생님'으로 통일했다. 그는 "청소업계에선 전문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더 많은 직원들을 청소전문가로 키워내 청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