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재산 해외도피에 무기력한 예보
1998년 공적자금 7889억원이 투입된 새한종합금융 간부는 부실 책임이 드러나자 미국으로 도피했다. 당시 빼돌린 돈으로 자녀 이름을 내세워 캘리포니아의 고급 주택을 구입했다. 예금보험공사는 미국 법원에 중재를 요청해 13년 만인 최근에야 120만달러를 회수했다.
예금보험공사는 국내 금융업의 마지막 보루다. 금융회사가 부도나면 예금자당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예금을 보장한다. 이를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선 청산 · 매각 절차를 밟거나 부실 금융회사 대주주 등이 은닉한 재산을 찾아낸 뒤 회수실적에 따라 일정 비율로 배당해준다. 은닉재산을 많이 찾아낼수록 예금자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예보는 부실 책임자들이 해외로 빼돌린 돈을 환수하는 데에는 속수무책이다. 해외재산 환수를 본격화한 2007년 이후 실제로 회수한 금액은 480만달러(53억원)에 불과하다. 그동안 부실 관련자들이 국내에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낸 게 수천억원 규모인 것과 대조적이다.
주로 '은닉재산 신고센터'에만 의존해온 탓이다. 해외 재산 조사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기거나 제보자에 대해 포상금까지 내걸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평가다. 예보 내에서 해외 조사를 전담하는 인력은 한 명뿐이다.
예보 관계자는 "해외 도피자들이 다른 사람 이름으로 재산을 등록하거나 영문이름 철자를 일부러 여권명과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 신고센터 역시 예산 문제로 미국 캐나다 등 특정 국가 위주로 운영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털어놨다. 금융회사 부실에 책임을 져야 하는 간부들은 걸핏하면 비자금을 조성해놓고 해외로 도주하고 있다. 예보는 이들의 재산 빼돌리기를 막기 위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하지만 해외재산 환수실적만 놓고 보면 그런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조재길 경제부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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