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를 강타한 '11 · 11 옵션쇼크'에 따른 금융투자업계의 피해액은 총 1000억원 선으로 관측되고 있다. 금융당국이 1차적으로 집계한 피해금액이다. 하지만 대규모 손실을 입은 증권사가 더 있다는 루머도 떠돌고 있다. 피해액 규모도 크지만 피해 발생 과정을 되짚어보면 한국 증시의 취약성과 금융투자회사들의 허술한 위험 관리가 그대로 드러난 점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500억원 펀드가 '깡통펀드'로 전락

금융감독원은 11 · 11 옵션쇼크로 업계가 입은 직접적인 손실은 증권사 200억원,자산운용사 900억원 선으로 추정했다. 모두 20여곳 안팎의 증권사와 운용사에서 적게는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의 손실을 입었다. 물론 이익을 본 곳도 10여곳에 달하지만 총수익은 80억원 선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업계 순손실이 1000억원을 웃도는 셈이다.

특히 사모펀드 한 곳에서만 888억원의 대규모 손실을 내 충격파를 키우고 있다. 2008년 10월2일 와이즈에셋자산운용이 설정한 500억원 규모 '현대와이즈다크호스사모파생상품1호'가 대상이다. 이번 사태를 거치며 이 펀드는 자산이 -764억원으로 추락해 순자산이 마이너스인 깡통펀드가 됐다.

원래 펀드는 자산보다 더 큰 위험 부담을 질 수 없는 구조다. 하지만 이 펀드는 이미 76%의 운용손실을 입고 있어 이를 회복하기 위해 무리한 베팅을 했다는 지적이다. 이 펀드는 개인투자자 11명이 출자한 '회사형'으로 자산의 5배까지 투자(레버리지 비율 500%)할 수 있는 상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검사 결과가 나와봐야겠지만 레버리지 한도 500%까지 풀로 투자하다 손실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1차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주로 동원된 투자 방식은 풋옵션 매도다. 풋옵션은 미래 일정 시점에 기초자산을 미리 정한 가격과 수량으로 매각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풋옵션 매도자는 지수나 주가가 예상보다 더 하락하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수익구조를 갖고 있다.

◆손실 책임 문제로 진통 불가피

대규모 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손실 책임을 두고 거센 공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펀드 재산이 124억원에 불과해 옵션 손실액 888억원을 결제하려면 764억원을 누군가 부담해야 한다. 풋옵션 매수자들의 포지션 청산 요구에 응할 책임은 일단 이번 옵션계약을 중개한 하나대투증권이 진다. 안전한 매매 결제의 이행 책임이 중개회사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하나대투증권은 계좌내 증거금 등을 제한 760억원을 11일 대신 결제했다. 이 손실을 와이즈에셋에 청구해 받으면 되지만 문제는 와이즈에셋 측이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와이즈에셋은 이광재씨와 송준용씨가 각각 지분 43%와 24%를 보유한 개인회사로 자본금이 100억원이다. 자산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도 140억원에 불과해 회사를 팔아도 청구액 760억원을 갚을 수 없는 상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와이즈에셋은 펀드 수탁액이 2조4000억원인 중소형 운용사로 순이익 규모가 미미해 손실액 결제를 포기하고 부도나 청산을 택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이 경우 하나대투증권이 손실을 떠안을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 사모펀드가 일반적인 투자기구(펀드)가 아닌 '투자회사(회사형)'여서 펀드 가입자들이 회사 주주와 같은 입장이라 손실을 대신 물어야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회사형 펀드의 책임은 출자금에 국한하기 때문에 추가 부담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다. 전문가들은 예상밖 주가 급락으로 인한 초유의 사태라 발생 원인이나 손실 부담을 놓고 치열한 논란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