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사였던 신명비앤에프(현재 케이디세코)는 대주주가 400억여원을 횡령하거나 배임해 2006년 말부터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이 회사는 이듬해 궁여지책으로 본사와 자회사에 대해 분식회계한 재무제표를 회계법인에 건넸다. 신명비앤에프를 감사한 회계법인 화인은 분식회계를 눈치채지 못하고 '적정' 의견을 냈다. 그러나 다른 회계법인이 자회사 감사에서 분식회계를 발견하자 신명비앤에프의 분식회계가 드러났고,화인도 뒤늦게 2008년 4월 '의견거절'로 변경했다.

또다시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신명비앤에프의 대주주는 업계에서 상장폐지를 당하지 않게 해주는 것으로 유명한 회계사를 소개받았다. 이들은 채권자와 변호사,화인 회계사들까지 끌어들여 수백억원대의 대규모 분식회계를 기획해 실행에 옮겼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금융조세조사1부(부장검사 전현준)는 15일 신명비앤에프의 당기순손실 314억원을 숨기는 등 분식회계를 한 혐의(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등)로 이 회사 대주주 이모씨(47)와 허위 재무제표를 작성해 준 화인의 이사 백모씨(44),공인회계사 김모씨(37)를 비롯해 변호사와 채권자 등 1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씨는 약 120억원의 회사돈을 개인 용도에 사용하고 완전자본잠식 상태였던 자회사에 회사자금 약 280억원을 대여한 후 회수하지 못하는 등 회사에 400억여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횡령 및 배임)도 받고 있다. 신명비앤에프는 한때 2위권의 양계가공 업체였으나 지난해 4월 상장폐지됐다. 화인은 국내 10위권의 대형 회계법인이다. 회계사들이 회사 측의 장부 조작을 묵인해주는 방식의 소극적인 분식회계는 많았으나 기획에서부터 실행까지 도맡아 처리한 적극적인 분식회계 사건은 처음이다.

검찰에 따르면 회계사 김씨는 2008년 이씨로부터 1억1000만원 수수료와 함께 신명비앤에프 상장폐지 회피를 요청받자 "재무제표를 다시 가짜로 만들어서 화인에 재감사를 요구하자"고 제안했다. 김씨는 허위 재무제표 작성이 합법인 것처럼 위장하기 위해 변호사도 섭외토록 했다. 회사 측은 상장폐지 앞에 '같은 배'를 탄 채권자들도 끌어들였다. 이들은 다함께 화인을 찾아가 회계기준에도 없는 재감사를 요청했다. 뒤늦게 의견거절을 내 신명비앤에프 투자자들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질 위기에 몰린 화인 측도 기꺼이 수락했다. 1억1000만원은 '덤'이었다.

화인의 이사 백씨는 회계사 3명으로 팀을 구성해 분식회계에 착수했다. 이들은 회수가능성이 없는 채권 220억여원어치와 자회사 자본잠식으로 물어줘야할 지급보증 90억여원을 대손충당금이나 충당부채로 설정하지 않아 당기순손실 314억원을 '제로(0)'로 만들었다고 검찰은 설명했다. 변호사는 이 절차들이 모두 합법이라고 보고서를 올렸다.

화인은 이를 근거로 2008년 5월 신명비앤에프에 대해 상장을 유지할 수 있는 '한정의견'을 냈다. 상장폐지 기준은 자기자본 10억원 미만인데,화인이 낸 감사보고서에서는 이를 가까스로 넘긴 11억원으로 기재돼 있었다.

이들은 금융감독원의 내사로 범행이 들통나 검찰에 고발됐고 화인은 지난해 9월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부실한 감사로 회계법인이 업무정지를 받은 것은 2000년 대우사태와 관련해 당시 산동회계법인이 업무정지를 받은 이후 9년 만에 처음이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