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미국 경제의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났다. 빌려서라도 소비를 하던 미국인들이 갑자기 저축 모드로 돌아서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미국 가계의 저축률은 6.9%로 15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실업률이 10%에 육박하고 경기회복 시기를 점치기 어려운 와중에 개인들 입장으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고민거리인가? 바로 '저축의 역설' 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저축을 늘릴 경우 경제 전체의 소비가 줄어들면서 기업 매출이 감소하고 그에 따라 생산과 고용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개인들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고 결국 소비와 저축까지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특히 최근처럼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몇 달 사이에 저축률이 치솟을 경우 이른바 소비불황이 발생하면서 경기회복이 늦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말 그대로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 결과가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다.

이처럼 미시적 동기와 거시적 행동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는 사례를 우리 주변에서 찾아내 정리한 책 《미시동기와 거시행동(Micromotives and Macrobehavior)》이 나왔다. 30년 전에 출간돼 많은 찬사를 받아오다 이번에 새롭게 개정된 것이다.

저자는 게임이론으로 노벨경제학상(2005년)을 받은 토머스 셸링.게임이론의 대가이면서도 굳이 복잡한 게임이나 산식을 들먹이지 않고 독자의 흥미와 이해를 이끌어낸다.

당신이 강연장으로 들어서고 있다고 하자.당신은 십중팔구 중간쯤 어디에 앉고자 할 것이다. 그런데 좀 늦게 도착했더니 중간자리는 물론 뒷자리까지 가득 차 있다. 반면 앞자리는 몇 줄이나 덩그러니 비어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가서 앉기 보다는 머뭇거리면서 빈자리를 찾고 있지 않을까? 최악의 경우 앞자리는 비어 있고 뒤에는 서서 듣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개개인의 미시적 선택이 강연장 전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거시적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이때 만약 주최 측이 먼저 오는 사람들을 앞에서부터 앉게 한다면 이 같은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백인 손님들이 앉아 있는 식당에서 흑인 손님들이 한두 테이블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흑인들이 많아진다 싶은 순간 백인들이 서둘러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들어서던 백인들도 발길을 돌린다. 거주구역의 이주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티핑(tipping)'을 적용한 사례다. 어떤 동네에 소수인종 몇 사람이 들어가면 이전에 동질적인 인구 집단을 구성하던 사람들 중 일부가 떠나거나 떠날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동호인 클럽이나 공공해변,공원 등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다. 수년 전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말콤 글래드웰의 《티핑 포인트》도 셸링의 이 같은 아이디어를 첨단 유행과 전위예술,상품의 대박 등에 적용한 것이다.

이외에도 셸링은 반대편 차선에서 일어난 사고가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까닭,중고차 시장에 레몬(겉만 멀쩡하고 속은 썩은 차)만 몰리는 이유,핵무기 개발 경쟁이 치열했으면서도 히로시마 이후 60년 동안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배경 등을 사례로 들고 있다.

셸링의 폭넓은 시각과 번뜩이는 분석력이 경제 현상은 물론 군비 · 핵 경쟁,범죄,테러,인종 또는 성 · 나이 · 소득에 의한 분리,아이의 성별 선택과 같은 군사 · 외교 · 사회 · 심리 분야를 넘나들고 있다. 정책입안자와 기업의 임직원,자영업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최성환 대한생명경제연구원 상무 sungchoi@korealif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