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경쟁률 높아도 실제 계약은 기대 못미쳐

은평뉴타운ㆍ광교신도시 등 블루칩도 '쓴맛'

올해 분양시장은 거의 '빈사 상태'였다. 건설사들의 호객 행위만 요란했을 뿐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수요자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 결과 지방은 물론 수도권에서도 청약률 '제로(0)' 단지가 속출했다. 높은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어도 실제 계약 상황은 기대에 못 미쳤다. 모든 단지에서 미계약 물량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과 은평뉴타운,경기도 광교신도시 등 이른바 '블루칩'으로 주목받아온 지역도 '쓴맛'을 봐야 했다. 정부가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등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잇따라 제시했지만 수요자들의 발걸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분양물량은 감소…'대어'는 늘어나

올해는 지난해에 비해 전체 분양물량이 다소 줄었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전국에서 분양한 아파트 가구수는 31만6549가구였던 데 비해 올해는 이달 계획 물량까지 포함해 27만2723가구에 그칠 전망이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분양물량도 지난해에는 16만9654가구였지만 올해는 15만866가구로 예상된다.

대신 올해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대어급' 아파트 분양이 많았다. 서울에서는 강남권에서도 요지로 꼽히는 서초구 반포동 지하철 3ㆍ7ㆍ9호선 고속터미널역 역세권에서 재건축 아파트 물량이 쏟아져 나왔다. 지난 6월에는 '반포자이'(3410가구)가,10월에는 '래미안퍼스티지'(2444가구)가 각각 분양돼 그동안 이렇다 할 신규 분양물량이 없던 강남권을 해갈시켰다. 강북에서는 용산과 함께 새로운 '블루칩'으로 주목받는 뚝섬에서 3월 '한숲e-편한세상'(196가구)과 '갤러리아포레'(230가구)가 선보인 데 이어 8월에는 은평뉴타운 2지구와 1지구 잔여 물량이 나왔다.

수도권에서는 분양 첫 테이프를 끊는 신도시가 잇따랐다. 경기도 김포 한강신도시가 9월,수원ㆍ용인 광교신도시가 10월에 분양됐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와 청라지구에서도 오피스텔과 아파트 분양이 풍년을 이뤘다.


◆네 곳 중 한 곳은 청약률 '제로'

그러나 분양 결과는 참혹했다. 무엇보다 순위 내 청약에서 모집 인원을 모두 채우는 단지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뚝섬 '한숲e-편한세상'과 '갤러리아포레' 모두 순위 내 청약에서 80% 이상 미분양됐고 지난해부터 분양 불패 지역으로 떠오른 인천 청라지구에서도 올 하반기 들어 미분양 아파트가 잇따랐다.

'청약률 제로' 단지도 쏟아졌다. 금융결제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달까지 전국에서 청약을 접수한 388개 단지 가운데 25.2%인 98개 사업장이 단 한 명의 청약자도 받지 못했다. 아파트 4곳 가운데 한 곳은 청약률 제로였던 셈이다. 이 가운데 서울지역 아파트도 3곳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높은 청약경쟁률이 곧바로 계약률 100%로 통했던 예전의 공식도 올해는 깨졌다. 즉 청약경쟁률과 계약률이 따로 노는 현상이 일반화하는 경향을 보였다. 당첨 이후 계약을 하지 않는 청약자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광교신도시의 첫 분양 아파트인 '참누리 더레이크힐'은 최고 224 대 1,평균 17.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계약기간에 30%가량이 계약하지 않았으며 현재까지도 미계약 물량이 남아 있다. 서울 은평뉴타운 1,2지구도 평균 10 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했으나 현재까지 21%가량의 미계약 물량이 남아 있으며 반포자이와 래미안퍼스티지도 모두 순위 내 청약에서 모집 인원을 채웠지만 아직까지 추가 계약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 같은 결과는 무엇보다 부동산 경기 침체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9월 미국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신청을 한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면서 분양권 전매제한 완화 등 정부의 규제완화 대책이 전혀 약발을 내지 못하고 있다. 고분양가도 한몫했다. 광교신도시와 한강신도시는 모두 인근 신규 분양아파트보다는 분양가가 낮았지만 주변 시세에 비해서는 높았다. 반포동 재건축 아파트들도 뛰어난 입지에도 불구하고 주변 시세보다 비싼 분양가로 입주자 모집에 애를 먹고 있다.


◆내년 판교 분양 변수될까

전문가들은 내년도 분양 시장 역시 올해처럼 '흐린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에 따른 실물경기 침체로 부동산 시장에 냉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분양물량도 올해 같은 기간보다 더욱 감소할 전망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지난 3일 현재 상위 100대 건설사 가운데 25개사만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내년 분양계획을 올려 놓았다. 그나마 올려진 분양계획도 지역이나 주택형,분양시기,총가구 등 상세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다만 내년 초에 판교신도시의 마지막 아파트가 분양을 앞두고 있어 분양시장에 활력을 가져다 줄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광교에 비해 강남 접근성이 높은 데다 채권입찰제를 적용받지 않아 2006년 분양가보다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