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흥행부진에 자본잠식. 상장폐지도

제작비 아끼려 중견배우 기용 '톱스타 수난'

한국 영화 불황으로 자본금을 모두 날린 영화 제작사들이 속출하고 있다.

흥행 부진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대규모 결손금이 쌓인 결과다.

작년에 관객 200만명을 넘긴 한국 영화는 '디워''화려한 휴가' 등 10편으로 전년의 16편에 비해 크게 줄었다.

한국 영화 점유율도 50.8%로 2002년(48.3%) 이후 최저다.

과거에는 10편을 제작하면 3편 정도가 손익분기점을 넘었지만 요즘엔 1편도 어려운 실정이다.

제작비조차 건지지 못한 제작사들 가운데는 '개점 휴업' 상태인 곳도 많다.

중견 영화사 엔토리노는 지난해 369억원의 순손실을 내면서 자본이 전액 잠식됐다.

코스닥 시장에서도 퇴출 명령을 받아 11일 상장 폐지됐다.

한류 스타 송승헌.권상우를 내세워 큰 기대를 갖고 지난달 개봉한 '숙명'마저 관객 100만명을 밑돌아 경영 상태는 더 악화될 전망이다.

프라임그룹 계열의 프라임엔터테인먼트도 지난해 470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50% 이상 자본 잠식 상태에 빠졌다가 감자(자본금 줄임)와 대주주인 프라임개발의 대규모 증자 덕분에 가까스로 결손을 털어 냈다.

다행히 회사 측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각각 선보인 '세븐 데이즈'와 '더 게임'의 흥행 성공에 힘입어 1분기 흑자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MK픽처스도 예외가 아니다.

이 영화는 관객 400만명을 넘기며 '우생순' 신드롬까지 만들어 냈으나 다른 영화들의 흥행 실패로 경영난에 빠졌다.

이에 따라 MK픽처스의 전신이자 모회사인 GBS가 지난해 19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자본이 50% 넘게 잠식돼 최근 감자를 단행했다.

'헨젤과 그레텔'의 제작사 바른손 역시 지난해 말 기준으로 자본이 17.04% 잠식됐다.

그래서 올 여름 개봉할 대작 '놈,놈,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송강호.이병헌.정우성이 주연한 이 영화의 흥행 여부에 회사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제작사들의 이 같은 몰락은 향후 한국 영화의 제작 위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강우석 감독의 시네마서비스는 매년 해 오던 연간 투자.제작 계획 발표를 올해 초 하지 못했다.

국내 3대 제작사로 꼽히는 영화사 봄은 2005년 '너는 내 운명' 이후 3년 만에야 신작 '멋진 하루'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따라 출연료가 비싼 톱 배우들보다 연기력이 뒷받침되는 중견 배우를 주연으로 기용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김윤석('추격자') 천호진('GP506') 김해숙('경축! 우리 사랑') 등이 그 예다.

영화 제작 시장이 KT를 대주주로 하는 싸이더스FNH,투자.배급을 시작으로 영화업에 진출한 SK텔레콤 등 자금력을 가진 업체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이동희 맥스창투 이사는 "추석이나 설 연휴 기대작마저 줄줄이 깨지면서 '만들어 봐야 손해만 본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며 "중.소형 제작사 중에는 아예 일손을 놓고 있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병락 KM컬쳐 부사장은 "제작사들이 자본을 대는 쪽의 입맛에 맞춘 '기획 영화'를 만들어 주는 하청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영화의 다양성과 작품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