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물을 분양받는 과정에서 ‘분양대금의 일정부분은 대출가능하다’고 분양회사로부터 안내받는 경우가 많다. 분양담당자로부터 구두상담은 물론이고, 분양광고문이나 대출상담안내문에서까지 ‘분양대금 --%까지 대출가능’이라는 식으로 ‘과감’하게 홍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당초 광고에서 표시된 금액보다 적은 금액만이 대출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로 인해, 분양대금을 납입하기 곤란해졌다면 법률적으로는 어떻게 판단될 수 있을까? 결론을 단정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대출비율이나 금액이 예상보다 어느 정도 줄어들었는지가 중요한 판단요소가 될 수 있다. 예상보다 적어진 대출금액이나 대출비율이 전체 분양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다면, 이러한 사유를 이유로 분양계약자체를 해제할 수도 없고, 또 분양대금을 납부하지 못한 행동을 정당화할 수도 없을 것이다.

만약, 예상보다 적어진 금액이나 비율이 전체 분양대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면, 법적으로 어떠한 구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해 판단한 서울지방법원 2000. 7. 20. 선고 99나 77808호 판결을 소개하기로 한다(이 항소심 판결은, 대법원에서도 심리불속행으로 그대로 확정되었다). 이 판결은, 이와 같은 문제에 관한 여러 가지 쟁점에 대해 판단하고 있다.

## 광고된 대출금 집행이 실제로 이루어지도록 분양회사가 보장할 법적인 의무는 없다

이 사건에서는, 약속한 대출금액에 상당히 미달하여 대출이 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수분양자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계약해제를 할 수 있는지가 1차 쟁점이 되었다. 광고된 대출금액이 수분양자에게 그대로 대출될 수 있도록 분양회사가 보장해 줄 법적인 의무인지의 문제이다. 만약, 이것이 분양회사의 분양계약상 의무라고 한다면,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분양회사의 이러한 의무위반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할 수 있게 된다. 위 판결은 이 점에 대해, ‘분양회사가 신문광고 및 분양상담에 의하여 금융기관에 의한 중도금대출이 가능하다고 선전하였더라도 분양계약서에 중도금의 대출절차를 비롯하여 그에 관한 아무런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다면, 그 선전은 계약의 유인에 불과할 뿐 분양회사가 스스로 중도금대출이행의무를 부담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즉, 광고된 대출금액이 그대로 대출되게 할 의무는 분양회사에게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반적인 거래관행으로 볼 때, 대출결정은 해당 금융기관이 대출받는 사람의 신용상태 등을 종합하여 독자적으로 판단하는 것이고, 대출에 관한 광고나 안내를 분양회사에서 하는 것은 분양을 수월하게 하기 위한 전략차원에서 대출절차상의 안내를 하는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서 분양계약의 내용이라고는 보기 힘들고, 단순한 계약의 유인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 민법상 착오이론에 의한 취소는 가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수분양자로서는 어떠한 이유로도 분양계약을 소급적으로 무효화할 수 없는 것인가? 위 판결은 이 점에 대해서 “의사표시의 착오”이론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 수분양자가 분양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은 분양회사에게 중도금대출이행의무가 있어 당연히 중도금대출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착오에 빠져 그 의사표시를 하게 된 것이고, 이러한 착오는 일종의 “동기”의 착오라고 판단한 다음, 비록 중도금대출에 관한 광고나 안내는 분양계약을 체결하는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기에는 부족하지만, 수분양자가 광고된 대출이 응당 이루어질 것이라는 착오를 일으키게 된 원인제공이 분양회사측에 있고, 그 대출금이 수분양자에게 지급되지 않고 분양회사에 직접 지급되는 등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하면서 실제로 그런 방식으로 대출이 이루어져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수분양자로서는 분양회사로부터 중도금대출이라는 동기의 제공이 없었더라면 중도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어 분양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 착오가 분양회사에 의해 촉발된 것이니만큼 그 동기는 법률행위의 중요부분에 해당한다고 하여, 수분양자로서는 분양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 분양대금 미납을 이유로 한 위약금부과는 신의칙위반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광고에서 가능하다고 한 대출이 이루어지지 않아 분양대금을 납입하지 못하고 있는 수분양자에 대하여 분양대금미납을 이유로 계약을 해제하고, 분양계약에서 정한 위약금(손해배상예정)을 부과할 수 있을까? 위 판결은, 이러한 위약금청구가 신의성실의 원칙상으로 불가하다고 판단하였다. 금융기관에 의한 중도금대출이 가능하다는 분양회사의 능동적, 적극적 유인에 따라 분양계약이 이루어졌는데, 수분양자의 중도금채무불이행을 이유로 한 분양계약해제의 원인이 수분양자가 실제로 중도금대출을 받지 못한데서 비롯된 것이라면, 분양회사가 수분양자에 대하여 중도금미납을 이유로 분양계약을 해제하고 분양계약상의 위약금 규정을 들어 이미 지급된 계약금의 자기귀속을 주장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처사로서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시하였다.

결국, 위 판례에서의 사안에서는 위약금몰수없이 납부한 분양대금전액을 반환해야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분양계약의 현실을 제대로 직시한 매우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본다.

## 분양광고에 명시한 대출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다

분양전략차원에서, 실제 대출이 가능한 범위 이상으로 대출이 가능한 것처럼 광고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분양회사 입장에서는, ‘향후 대출이 어떻게 되든간에 일단 분양계약을 체결해놓고 보자’는 식의 관행에 젖어있는 것이다. 위 판결에서 나타난 것처럼, 대출금문제는 분양회사가 약속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겠다’라고 발뺌하면 그만인 것이다. 분양회사가 이를 지켜줄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민사상 착오이론을 통해 반환된다고 하더라도 겨우 납부한 원금 정도일 뿐이고, 2,3심 재판을 하면서 버티기로 일관하면 수분양자 중에서 누가 감히 재판을 하겠느냐라고 분양회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필자가 재판 중인 사례 역시 이와 비슷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분양회사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분양광고에서 표시된 “잔금 70% 3년거치, 5년분할상환”이라는 약속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있다. 위 사안은 약 8억원에 가까운 분양대금에서 70%에 해당하는 잔금은 3년거치, 5년분할상환형식으로 대출가능하다고 하여 분양받았는데, 실제로는 60%도 되지 않은 금액밖에 대출되지 않아 결국 잔금이 납부되지 못한 상황에서 분양대금미납을 이유로 분양회사가 계약을 해제해 버린 것이다. 이 사안에서 필자는 수분양자를 대리해서 분양회사를 상대로 납부된 분양대금을 반환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현재 재판 진행 중에 있다. 이 사안에서 분양회사는 ‘잔금 70%가 대출가능하다는 문구의 취지는, 대출자의 신용상태 등을 고려하여 가능한 최대한의 비율일 뿐이며, 구체적인 대출비율은 각각의 대출자에 따라 차등될 수 밖에 없다’며 70%까지 대출되지 못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단서 없이 “잔금 70% 3년거치, 5년분할상환”이라고 안내받으면 신용상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보통의 회사로서는 분양대금의 70%까지는 대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만약 분양회사의 논리와 같이 신용등급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면, 그런 내용이 사전에 명시되거나 설명되었어야 한다. 어느 주장이 타당한지는 향후 재판에서 판단되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굴지의 대기업임에도 불구하고 분양율을 높이기 위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문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매우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현재 우리의 분양실정하에서 분양회사에서 내세우는 대출광고는 그대로 믿을 수 없다. 분양과정에서 대출에 관한 광고는 분양회사에서 책임지지 않는 미끼(유인)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분양광고에서 표시된 대출문구를 그대로 신뢰하지말고, 분양계약체결 이전에 미리 해당 금융기관과의 상담을 통해 구체적인 분양가능금액을 확인하거나, 광고된 대출금액에 대해서는 분양회사가 보장한다는 취지의 특약을 분양회사로부터 받아서 분양계약서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상-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