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贈汪倫(증왕륜), 李白(이백)
[한시공방(漢詩工房)] 贈汪倫(증왕륜), 李白(이백)
[한시공방(漢詩工房)] 贈汪倫(증왕륜), 李白(이백)
<사진 출처 : Baidu>
贈汪倫(증왕륜)

李白(이백)

李白乘舟將欲行(이백승주장욕행)
忽聞岸上踏歌聲(홀문안상답가성)
桃花潭水深千尺(도화담수심천척)
不及汪倫送我情(불급왕륜송아정)

[주석]
贈汪倫(증왕륜) : 왕륜에게 <시를 지어> 주다. 왕륜은 도화담(桃花潭)에서 가까운 가촌(賈村)에 살았던 호방한 선비로 알려진 인물이다.
李白(이백) : 시선(詩仙)으로 일컬어지는 중국 성당(盛唐) 시기의 대시인으로 자(字)는 태백(太白), 호(號)는 청련거사(靑蓮居士)이다.
乘舟(승주) : 배를 타다. / 將(장) : 장차, 막. / 欲行(욕행) : 가려고 하다, 떠나려고 하다.
忽(홀) : 문득, 불현듯. / 聞(문) : ~이 들리다, ~이 들려오다. / 岸上(안상) : 언덕 위. / 踏歌(답가) : 서로 손을 잡고 발을 구르며 박자를 맞추어 부르는 노래라는 뜻이다. / 聲(성) : 소리.
桃花潭水(도화담수) : 도화담의 물. 도화담은 안휘성(安徽省) 경현(涇縣) 서남쪽에 위치한, 장강(長江)의 지류인 청익강(靑弋江)의 한 물굽이인데, 『일통지(一統誌)』에서 “그 깊이를 헤아리기 어렵다.[其深不可測]”고 했을 정도로 물이 깊기로 유명하였다. / 深千尺(심천척) : <물의> 깊이가 천 자이다.
不及(불급) : ~에 미치지 못하다. / 送我情(송아정) : 나를 전송(餞送)하는 정(情).

[번역]
왕륜에게 주다

나 이백이 배를 타고
막 떠나려고 하였더니
문득 언덕 위에서 들려오는,
발 구르며 부르는 노래 소리!
도화담의 물이
깊이가 천 자라지만
왕륜이 나를 전송하는 정에는
미치지 못하리라.

[번역노트]
이 시는, 시를 지어 전해주는 주체인 이백(李白)이 시의 본문 안에다 자신의 이름과 시를 받게 될 상대방의 이름까지 명시한, 그 유례(類例)를 찾기 어려운 매우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두보(杜甫)와 더불어 당시(唐詩)의 양대 산맥(山脈)을 이루었고, 특히 절구(絶句)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보여주었던 이백의 걸작 절구 가운데 하나인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자면, 우선 아래와 같은 배경 이야기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이미 전국적인 명사(名士)가 된 이백이 어느 해 봄날에 지금의 안휘성(安徽省) 경현(涇縣) 일대에서 유람하고 있었는데, 그 지역의 유지였던 왕륜(汪倫)이라는 선비가 이백을 직접 모시고 싶은 생각이 들어 편지를 보내 말하기를, “제가 살고 있는 곳에는 도화담(桃花潭)이 있고, 그 도화담 주변에는 ‘십리도화(十里桃花)’와 ‘만가주점(萬家酒店)’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에 솔깃해진 이백이 왕륜을 따라갔으나 물굽이의 이름인 도화담이라는 곳 주변에는 복숭아나무 한 그루와 작은 주점이 하나 있었을 뿐이었다. 이백이 화가 나서 “십 리에 걸쳐 피어있다는 복사꽃[十里桃花]은 뭐고, 만 집이나 된다는 술집[萬家酒店]은 도대체 뭐요?”라고 하자 왕륜이 대답하기를, “우리가 배를 타고 지나온 곳이 십리에 이르는 도화담이니 이 복숭아나무의 꽃이 ‘십리(十里) 도화담의 도화(桃花)’가 되는 것이고, 저기 술집 주인의 성씨(姓氏)가 ‘만(萬)’이니 ‘만가(萬家)의 주점(酒店)’이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제야 이백은 왕륜이 자신을 오게 하기 위해 꾀를 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 호의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좋은 술과 맛난 음식으로 이백을 환대하며 자기 마을에서 여러 날을 묵게 하였을 왕륜이, 작별에 앞서 성대한 전별연(餞別宴)을 베풀고 노잣돈을 두둑하게 건네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리하여 이백은 흡족한 마음으로 왕륜과 마을 사람들의 환송을 뒤로 하고 배에 올랐을 것이다. 이제 배의 닻줄만 풀면 이 도화담을 떠나갈 터이건만, 문득 나루터 근처 언덕 위에서 왁자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백에 대한 흠모의 정이 다하지 않은 왕륜 일행이 발을 구르며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전별연을 치르고도 다시 한 번 환송의 정을 보여준 왕륜의 그 지극(至極)한 정성(精誠) 앞에서, 황제의 여인에게 벼루를 들게 하기도 했다는 천하의 이백조차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멋들어진 시가, 술이 아직 깨지도 않았을 이백의 붓끝 아래서 태어났을 것이다. 원대(元代)의 양제현(楊齊賢)이, 왕륜의 후손들이 지금껏 그 시를 보물로 여기고 있다고 하였으니, 왕륜의 까마득한 후손에 이르기까지 이백에 대한 흠모의 정이 어떠했을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로 인하여 왕륜은 마침내 이백과 함께 영원을 사는 사람이 되었다. 한 때 베풀었던 호의(好意)와 보여주었던 지성(至誠)이 그렇게 만든 것으로 보자면, 꼭 무엇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진실된 호의와 지성이 때로 엄청난 선물이 되어 돌아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사소한 인연조차 가볍게 생각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이런 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성이면 하지 못할 게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백으로 하여금 이런 걸작을 남기게 한 것은 이백의 천재성이 아니라 왕륜의 그 지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어찌 공연히 생겨난 것이겠는가! 하늘도 감동시킨다는 그 지성이 어찌 이백인들 감동시키지 못했겠는가! 인간 세상의 매사 또한 당연히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이백이 왕륜을 위해 지은 이 시 한 수로 인해 도화담도 덩달아 역사적인 명소가 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이백이 배를 탄 곳으로 전해지는 동원고도(東園古渡)와 왕륜이 자기 일행들과 발을 구르며 노래 불렀다는 그 언덕에 세워진 답가안각(踏歌岸閣)은 물론, 왕륜의 묘소(墓所)까지 관광지로 개발이 되어 그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으니, 엄청난 시간의 간극(間隙)을 뛰어넘어 지금에도 여전히 드리우고 있는 대가(大家)의 그늘이, 봄 하늘처럼 넓고 봄 햇살처럼 다사롭게만 여겨진다.

오늘 소개한 이백의 이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압운자는 ‘行(행)’·‘聲(성)’·‘情(정)’이다.

2022. 5. 24.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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