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정은기
그 마음 저울로 달아본 적 없고
그 생각 자로 재본 적도 없었지
내 서툰 삶에
내 사막 같은 가슴에
환하게 들어와
꽃을 피워주는 너
그 이름 가만히 불러보니
세상이 온통 행복이구나
[태헌의 한역]
向親舊(향친구)
曾無衡汝心(증무형여심)
亦無度汝思(역무도여사)
吾生誠拙澀(오생성졸삽)
吾胸如沙地(오흉여사지)
汝入胸與生(여입흉여생)
明朗使開花(명랑사개화)
低呼汝姓名(저호여성명)
世上滿休嘉(세상만휴가)
[주석]
向親舊(향친구) : 친구에게.
曾(증) : 일찍이.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無(무) : ~이 없다, ~을 한 적이 없다. / 衡汝心(형여심) : 너의 마음을 저울질하다.
亦(역) : 또, 또한. / 度汝思(도여사) : 너의 생각을 재보다.
吾生(오생) : 내 삶. / 誠(성) : 진실로, 정말. 한역의 편의를 위하여 원시에 없는 말을 역자가 임의로 보탠 것이다. / 拙澀(졸삽) : 서툴다, 굼뜨고 서툴다. ※ 이 구절은 원시의 “내 서툰 삶”을 문장으로 고친 것이다.
吾胸(오흉) : 내 가슴. / 如沙地(여사지) : 사막과 같다. ※ 이 구절은 원시의 “내 사막 같은 가슴”을 문장으로 고친 것이다.
汝入胸與生(여입흉여생) : 네가 <내> 가슴과 <내> 삶에 들어오다.
明朗(명랑) : 밝고 환하게. / 使開花(사개화) : <내 가슴과 내 삶으로> 하여금 꽃피게 하다.
低(저) : 나직이. 원시의 “가만히”에 대한 역어(譯語)로 역자가 골라본 말이다. / 呼(호) : <이름 따위를> 부르다. / 汝姓名(여성명) : 너의 이름.
世上(세상) : 세상. / 滿休嘉(만휴가) : 경사스런 일이 가득하다, 경사스런 일로 가득하다. ‘休嘉’는 기쁜 일 내지 경사를 뜻하는 ‘休慶(휴경)’과 같은 의미이다. 원시의 “온통 행복이구나”를 역자가 시구의 의미와 압운(押韻)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옮겨본 말이다.
[한역의 직역]
친구에게
너의 마음 달아본 적 없고
너의 생각 재본 적도 없지
내 삶은 정말 서툴었고
내 가슴 사막 같았는데
네가 내 가슴과 삶에 들어와
밝고 환하게 꽃 피워주었지
너의 이름 나직이 불러보니
세상이 경사스런 일로 가득
[한역 노트]
상대방의 마음을 저울에 달아보고 상대방의 생각을 자로 재보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부족할 때 취하는 행동이므로, 원시의 1행과 2행은 친구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을 천명한 시구로 이해할 수 있다. 상대방을 나인 듯이 믿는 친구라면 의심이 끼어들 여지가 없는 법이다. 그런 믿음직한 친구는 있기만 해도 좋을 터인데, 그 친구가 내 삶과 내 가슴에 들어와 꽃까지 피게 해준다면 어찌 고맙지 않겠는가! 그 이름을 가만히 불러본다는 것이 바로 그런 고마움에 대한 감동을 표현한 것이라면, 세상이 온통 행복이라고 말한 것은 그 감동의 크기를 극대치로 계량화(計量化)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친구의 존재는 공기와 같아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친구의 존재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은,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고요히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일 공산이 크다. 시인의 이 시 역시 그 비슷한 상황에서 지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친구가 없는 것은 혼이 없는 몸과 같다.[Who finds himself without friends is like a body without a soul.]”고 한 영국 속담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친구의 부재(不在)는 누구에게나 슬픔이자 아픔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 곁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즐거운 마음으로 기뻐해야 할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친구가 있다는 사실만을 기뻐할 뿐이라면 친구의 의미는 그만큼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친구를 뜻하는 한자 ‘友(우)’가 두 사람이 서로 손을 잡은 모양을 형상화한 글자라는 사실이 상징적으로 암시하듯, 친구란 어려울 때 손을 잡아줄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서로를 계발(啓發)시켜줄 수 있는 사이라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정은기 시인 스스로가 시에서 쌍방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인이 받은 것이 있는 것처럼 준 것 또한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정은 그러는 가운데 키를 키워가는 법이므로……
역사적으로 빛나는 우정의 표상으로 중국에는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이 있었고, 그리스에는 다몬과 피시아스가 있었으며, 우리나라에는 오성(鰲城)과 한음(漢陰)이 있었다. 그리고 예로부터 소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잣나무가 기뻐한다는, 다시 말해 벗이 잘됨을 기뻐한다는 뜻의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는 성어(成語)가 있었다. 빛나는 우정의 길을 제시하는 에피소드와 성어가 있음에도 ‘내’가 기뻐할 멋진 우정을 만들어가지 못한다면, 그 원인은 결단코 ‘내’게 있을 것임을 아프게 반성해 본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는데 누가 내게 마음을 열겠는가! 간과 쓸개를 내놓고 서로에게 보인다는 뜻의 간담상조(肝膽相照)라는 성어는 그래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역자는 이 시를 한역하면서 3인칭으로 칭한 “그”를 너를 뜻하는 ‘汝(여)’로 일관되게 고쳐 번역하였으며, 4행으로 이루어진 2연을 4구로 한역하는 과정에서 제법 많은 변화를 도모하였다. 곧, 처소를 나타내는 부사구인 2연의 첫 2행을 2구의 문장으로 바꾼 후에, 긴 관형어를 끌고 있는 뒷부분 2행의 마지막 글자 “너”를 주어로 삼아 시구를 재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원시에서는 “들어와”의 수식어처럼 쓰인 “환하게”를 부득이 “꽃을 피워주는”의 수식어가 되게 하였다. 이 역시 번역의 불가피한 고충이니 두루 헤아려주기 바란다. 역자는 3연 8행으로 된 원시를 8구로 이루어진 오언고시(五言古詩)로 한역하였는데, 짝수 구마다 압운하면서 전반과 후반 4구의 운을 달리하였다. 그러므로 이 한역시의 압운자는 ‘思(사)’·‘地(지)’, ‘花(화)’·‘嘉(가)’가 된다.
2022. 5. 10.
<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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