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총무와 펠츠만효과
(101-19) 동호회 총무와 펠츠만효과



1976년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인 샘 펠츠만(Sam Peltzman)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펠츠만은 안전벨트, 에어백 같은 새로운 안전 기술을 새로운 차들에 장착하도록 법적으로 의무화했지만 그 후에도 도로는 전혀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안전장치가 도입된 이후에 사고당 사망률은 크게 낮아졌지만 사고 수는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전체 자동차 사고와 사망자 수가 늘어난 것이다. 왜 그렇게 됐을까? 안전성이 높아지면 운전자는 이를 믿고 더 난폭하게 운전을 하기 때문이다. 즉, 사고 위협이라는 비용이 감소함에 따라 고속 주행이라는 편익을 운전자가 취한다는 것인데 이는 어찌 보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브레이크의 성능에 비례한다는 말이 있다. 운전자는 성능 좋은 브레이크를 믿기 때문에 더욱 빨리 주행하고 싶어 하고, 때문에 자동차 제조 회사는 더욱 속도를 낼 수 있는 엔진을 개발하게 된다. 우리가 여실히 목격했던 2008년 금융 위기와 경제 침체도 펠츠만 효과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투자위험도를 줄인다는 파생상품을 과신해 모럴해저드가 생겨 방만하게 투자하다가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김민주의 경제법칙 101 중에서)



동호회나 동창회는 마음 편하게 모여야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회원도 서너 명이서 특별히 모임을 갖자고 작정하고 시작하는 모임도 있지만, 서로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모임이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럴 때는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통한다. 그런데 회원의 수자가 하나둘 늘고 어느새 같은 일을 겪어도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예를 들면 동네 친목모임에서의 일이었다. 그 동네에서 오래 살던 이웃들이 모여 그저 한두 달에 한번 정도 동네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형님 아우 하면서 웃고 즐기던 모임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아는 이 사람 저 사람들이 가입하기 시작하고, 모임의 이름도 정해졌다. 그러다 보니 또 모양새를 갖추어야 한다고 회칙도 만들었다. 모임이 잘 되기 위하여는 연간 회비에 대한 규정,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빈도와 회수에 대한 의무 규정, 모임의 장소에 대한 규정, 회장이 할 일, 총무가 해야 할 일 등등에 대한 규정을 만들었다. 이런 규정을 만들어 놓으니 제법 체계가 갖추어진 듯해서 처음에는 뿌듯하고, 모임이 천년만년 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빠진 사람에게 벌칙이 주어지고, 힐난하다 보니 규정이 모임을 즐겁게 하기보다는 족쇄가 되었다. 빠지지 말라고 만든 규칙이 귀찮아서 더 빠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회원들의 불만도 늘어나더니, 급기야는 회원들 간에 분란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줄더니만 결국 처음 시작하던 사람들만 남았다. 그리고 회장님과 총무님은 사라지고 다시 본연의 형님 아우만 남았다.



에어백, 잠김 방지 제동 장치(ABS), 충돌 방지 장치, 블랙박스 같은 자동차 안전장치는 다양하게 개발되고 있다. 엔지니어들의 당초 예상과는 달리 사고율은 그리 줄어들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안전장치 개발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상대방 차에 의해 사고가 났을 경우 사고 정도와 사망률을 줄이는 데에는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동차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보행인이나 자전거, 오토바이 이용자들의 교통사고 발생률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자동차의 사고를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사람 사이의 사고를 줄이는 것은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동호회를 천년만년 모두들 하하호호하며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그 욕심을 이룰 장치들을 만들어 낸다. 그게 나름대로의 규정이고 규칙이고, 마음의 속박이다. 그런 규칙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 그럴듯하게 있을 만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뒤엉켜서 때로는 서로 모순되기도 하고, 때로는 지킬 수 없는 규칙이 되어버린다. 가끔은 회원 간에 의견 충돌이 있을 수 있고, 허술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을 명시하면서 얽매이는 것은 자동차의 안전장치를 잔뜩 해놓고 속도는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올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동호회나 향우회 같은 비공식 모임은 머리를 쓰러 나오기보다는 마음을 쓰러 나온다. 회원들이 단순한 마음으로 나올 수 있도록 총무는 늘 신경 써야 한다.

회장은 모임의 엑셀레이터를 밟는다면, 총무는 옆과 뒤를 보면서 브레이크를 밟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홍재화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