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가 코딩 못 하는데…"난 저성과자" 막 나가더니 결국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개발자인데 코딩 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도, 개선 의지도 없고 근무 태도도 불량했다면 해고 대상자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저성과를 이유로 한 해고를 인정한 판결은 드물어 눈길을 끌고 있다.

○"난 저성과자"...대놓고 포기한 직원

2001년 대기업 IT분야 계열사인 B사 입사해 컴퓨터 시스템 관련 업무를 맡아온 A는 2011년, 최근 3년간 평가 성적 저조를 이유로 저성과자로 선정돼 '저성과자 역량 향상 프로그램(PIP)'을 2차례 수료했다.

이후 개선 노력이 없었고 성과향상 목표서 작성 지시를 거부하는 등 태도 불량을 보인 끝에 결국 2012년 회사로부터 해고당했다. 하지만 A는 해고무효 소송을 냈고 승소해 2014년 회사에 복직했다.

복직 이후 A의 태도는 더 과감해졌다. 지원 나간 고객사에서 타사 직원과 말다툼을 벌여 고객사 요청으로 교체됐고, 이후 타지역으로 전보됐지만 "부당 전보"라며 언론에 제보하고 전보 무효 소송까지 제기했다.

A는 전보 무효 소송서 졌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6차례나 부서장 허가 없이 조기 퇴근했다가 감봉처분을 받기도 했고, 2016년부터 3년간 역량평가도 또다시 D로 최악이었다.

IT개발 업무를 맡았지만, 코딩 능력도 부족했다. 회사는 A의 업무를 덜어주고 1년간에 걸쳐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게 했다. 그래도 개선되지 않자 회사는 A를 다시 PIP로 돌려보냈다.

직원 1900여명 중 29명이 보내진 PIP에서도 A의 불량한 태도는 계속됐다. 2차례 진행된 코딩테스트에서 모두 0점을 받았고, 교육과정에서 인터넷에서 공개된 답안을 복사해서 제출하는 등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면담에서도 ‘해도 저평가, 안 해도 저평가인데 뭘 하라는 거냐’고 불만을 표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참다 못한 회사는 A를 결국 해고했다. 하지만 A는 되레 부당해고라며 "해고 기간 동안 임금도 전액 지급하라"며 "해고와 저성과를 이유로 한 연봉 동결 처분은 불법행위이므로 손해배상금 5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해고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서울중앙지법은 회사 손을 들어줬다(2021가합544824). 법원은 "근무 능력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하고 향후 개선 가능성도 작다"고 지적했다. 저성과자 프로그램을 수행한 29명 중 A만 제외한 28명은 업무에 정상 복귀한 점도 감안했다.

재판부는 "A는 업무 과정서 다른 보고서를 표절하는 등 부실하게 업무를 수행했고, 사적 통화와 냉방 문제로 자주 장기간 이석 행위를 했다"며 "회사가 주변 동료를 지정해 조언·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도 대부분의 업무를 방치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회사가 다수의 교육 기회를 제공했고 대부분의 근무 시간을 학습 시간으로 사용했음에도 개선되지 않은 것은 업무향상 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회사의 A에 대한 해고가 부당하다는 과거 판결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회사가 약 5년에 걸친 기간 동안 오로지 A를 해고할 목적에서 업무역량을 부당 평가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저성과자 관리, 자칫 직장 내 괴롭힘 될 가능성도"

개발자가 코딩 못 하는데…"난 저성과자" 막 나가더니 결국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도 개선 여지가 없는 저성과자 관리는 곤욕이다. 멀쩡한 회사 분위기가 엉망이 되는 것도 순식간이라 빠르게 대처해야 하지만, 현행 법과 법원 판례 대로라면 쉽지 않다.

대법원은 저성과자 해고가 유효하려면 △공정하고 객관적 평가 △근무 능력이 다른 근로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정도를 넘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한에도 미치지 못함 △낮은 향후 개선 가능성 등 '사회통념상 고용관계를 계속할 수 없을 정도'임을 요구한다. 고용관계 계속 여부에서는 △근로자의 근무능력 부진 정도와 기간 △전환배치 등 근무능력 개선을 위한 기회 부여 여부 △근로자의 태도 등도 함께 고려한다.

B사는 이미 한차례 저성과자를 이유로 해고를 감행했다가 쓴맛을 봤다. 이런 경험 탓인지 인내심을 발휘해 5년 가까운 PIP를 통해 A의 업무 능력이 객관적으로 낮고 개선 의지가 부족하다는 증거를 쌓아 나갔다. 객관적 평가 기준을 마련하고, 업무 관련 자격증을 따라고 개선 기회까지 1년가까이 주면서 까다로운 법원도 인정할 수밖에 없을 증거를 쌓아나간 게 승소의 배경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PIP는 치밀하게 설계하지 못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고 지적한다. 해고했다가 수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패소하게 되면 물어 줘야 하는 임금과 이자만 수억원이고, 인사·HR·채용팀의 '무능력'에 떨어지는 불호령은 보너스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PIP는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시행된 2019년 이후엔 자칫 괴롭힘 문제로 번질 수도 있게 됐다"며 "업무 성과 향상과 관련성이 떨어지는 프로그램 내용은 없는지 내용을 점검하고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