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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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보험사의 지나친 실손보험 혜택이 소비자의 과잉 의료 이용을 부추겨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보험사도 과잉의료를 일삼는 일부 고객의 도덕적 해이로 인해 손실이 불어나고 있는 만큼 건보 제도와 민간 실손보험 시장이 지속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한국경제신문이 국내 5대 손해보험사에서 제출받은 ‘실손보험 상위 청구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보험사로부터 가장 많은 실손보험금을 타낸 A씨는 1년간 도수치료와 체외 충격파 치료를 모두 252회 받았다. 보험사는 A씨에게 1년간 총 722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했다.

도수치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다. 하지만 도수치료 과정에서 받는 의사의 진료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때문에 환자가 도수치료를 받게 되면 건강보험 지출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인천의 한 요양병원 입원 환자는 25일간 198회의 도수치료를 받기도 했다. 하루에 8회꼴이다.

백내장 수술에 지급된 손해보험사의 보험금도 2016년 779억원에서 2020년 6480억원으로 증가했다. 4년 만에 8배로 늘어난 것이다. 이와 관련된 건강보험 지출도 4175억원에서 6825억원으로 증가했다.

특히 국내 손해보험 상품이 건보가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뿐만 아니라 건보가 적용되는 급여 항목에마저 혜택이 적용된다는 점이 환자의 과잉의료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건보가 적용된 후 환자가 지불해야 하는 ‘본인부담금’은 과잉의료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가 환자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서 역할을 하는데, 실손보험이 본인부담금마저 보상해주는 바람에 국민의 의료이용 문턱이 지나치게 낮아졌다는 것이다.

이진용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연구소장은 “민간보험이 비정상적으로 많은 도수치료와 백내장 수술 등을 보장하면서 보험회사의 보험금 지급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현복 전주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논문을 통해 “실손보험의 보장 범위 축소 정책은 보험사의 재무 건전성 증진 효과와 함께 국민건강보험 재정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실손보험 보장 범위 축소는 법정 본인 부담금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실손보험사 모두 과잉의료를 막을 수 없는 기존 실손보험 제도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보고 작년 7월 ‘4세대’ 실손보험 제도를 도입했다. 의료 이용량에 따라 실손보험료를 차등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 말 기준 주요 손해보험사 10곳 중 전체 실손보험 상품 가입 건수 2950만 건 중 4세대 실손보험으로의 전환 건수는 37만 건으로 1.2%에 그쳤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