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택으로 들어서는 MB > 지난해 3월 뇌물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지 349일 만인 6일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량을 타고 서울 논현동 자택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 자택으로 들어서는 MB > 지난해 3월 뇌물 횡령 등 혐의로 구속된 지 349일 만인 6일 ‘조건부 보석’으로 풀려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차량을 타고 서울 논현동 자택에 도착했다. /연합뉴스
자금 횡령과 뇌물 등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78)이 항소심에서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으로 풀려났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6일 이 전 대통령이 청구한 보석을 조건부로 허가했다. 지난해 3월 22일 서울동부구치소에 수감된 지 349일 만이다. 보석금은 10억원이다. 구속된 전직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은 이 전 대통령이 처음이다. 이 전 대통령의 2심 재판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명박, 349일 만에 풀려났지만 사실상 '가택연금'
법원, 가택연금 수준 보석 허용

재판부는 이날 “이 전 대통령의 구속 만기일(4월 8일)이 43일밖에 남지 않아 만기일까지 선고가 불가능하다”며 “구속 만기가 되면 자유로운 불구속 상태가 되기 때문에 조건부로 임시 석방해 구속영장 효력이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보석 석방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주거지 및 접견·통신 제한 등을 조건으로 내걸어 이 전 대통령을 ‘자택구금’했다.

석방 후 주거는 서울 논현동 자택으로 제한된다. 병원 진료를 받을 때마다 이유를 알리고 법원 허가를 받아야 한다. 배우자와 직계 혈족 및 그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접견이나 통신이 엄격히 금지된다. 휴대폰 문자와 이메일도 사용할 수 없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22일 구속된 상태로 재판을 받다가 1심에서 징역 15년, 벌금 130억원, 추징금 82억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1월 29일 이 전 대통령 측은 건강 문제와 더불어 구속 만료일(4월 8일)이 얼마 남지 않은 점 등을 이유로 재판부에 보석을 신청했다.

지난달 법원 인사로 항소심 재판장이 김인겸 부장판사(현 법원행정처 차장)에서 정준영 부장판사로 바뀌면서 구속 기한 내에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기 어려운 만큼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건강상태가 그다지 위급하지 않고 재판부 변경은 보석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등 양측이 팽팽하게 맞서 왔다.

이학수 김성우 김백준 법정 서나

이 전 대통령이 풀려나면서 그간 공전하던 항소심 재판이 새 국면을 맞이할 전망이다. 1월 2일 정식 재판을 시작한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채택한 증인 15명 가운데 3명밖에 소환에 응하지 않으면서 재판이 지연돼 왔다. 재판부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판으로 중요성과 인지도를 고려할 때 소환장이 송달되지 않은 증인들은 서울고법 홈페이지에 이름과 증인신문기일을 공지하겠다”며 “그럼에도 출석하지 않는 증인에겐 구인영장을 발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핵심 증인으로 불리는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 김성우 전 다스 사장,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 등의 소환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들의 증언을 두고 검찰과 변호인단의 공방이 이어지며 항소심이 ‘장기전’으로 돌입할 가능성이 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재판부가 제시한 보석 조건을 기꺼이 수용했다. 이 전 대통령은 재판부를 향해 “증인들과는 구속되기 전부터도 오해의 소지 때문에 만나지 않았다”며 “철저하게 공사를 구분한다”고 말했다. 보석 절차를 밟기 위해 법정을 떠나 구치감으로 이동하는 이 전 대통령 곁으로 이재오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등 지지자들이 몰려들어 악수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금부터 고생이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은 “최악은 면했다”며 “차분히 항소심에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이 보석으로 풀려난 것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법원 결정을 존중하지만, 국민적 실망이 큰 것 또한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어떤 정치적 고려도 없이 오직 법과 원칙에 따라 더 엄정하고 단호하게 재판을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보석 결정은 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허가한 것”이라며 재판 절차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신연수/배정철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