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속기록] 턱 괴고 앉은 진경준, 고개숙인 김정주…극명하게 엇갈린 '30년 지기'
진경준 전 검사장(49)은 당당했다. 턱을 괴고, 머리를 쓸어 넘기고, 팔을 책상에 걸쳤다. 법정에 출석한 일반 피의자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다른 한켠에 앉아있던 넥슨 창업주 김정주 NXC 회장은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침울한 모습이었다. 30년 지기지만 법정에서의 모습은 극명하게 갈렸다.

27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 509호 법정.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김진동)는 이날 진 전 검사장 사건에 대한 첫 공판을 열었다. 그는 김 회장으로부터 9억5000만원 가량의 뇌물을 받고 한진그룹 수사 무마 대가로 가족 명의 업체에 일감을 몰아달라고 청탁한 혐의 등으로 지난 7월29일 구속 기소됐다.

진 전 검사장은 하늘색 미결수복을 입고 검은색 시계를 왼쪽 손목에 착용한 채 법정에 출석했다. 머리는 잘 정돈됐고 표정은 당찼다. 말끔한 인상이어서 복장만 아니라면 피의자라 보기 어려웠다. 진 검사장 옆자리에는 김 회장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재판 내내 서로에게 눈길조차 한번 주지 않았다.

검사 측은 “진 전 검사장이 2005년 6월부터 2014년 12일까지 넥슨측으로부터 9억5300만원 상당의 뇌물을 받았다”고 주요 공소사실을 밝혔다. 주식 8억5370만원, 차량 4950만원, 여행비용 5011만원 등이다. 구체적으로는 △2006년 11월 진 전 검사장이 무상으로 받은 넥슨재팬 주식 8억5370만원 상당 △2008년 2월부터 2009년 3월까지 진 검사장이 사용한 넥슨 법인 명의의 제네시스 차량 리스료 1950만원과 차값 3000만원 △2005년 11월부터 2014년 말까지 11차례에 걸친 가족 해외여행 경비 5011만원 등이다.

한진그룹에 ‘일감 몰아주기’ 청탁을 한 혐의와 관련해 제3자 뇌물수수죄가 공소사실에 담겼다. 공직자윤리위에 허위 소명서를 제출한 것과 관련해 위계공무집행방해죄도 포함됐다. 진 전 검사장이 주식 거래를 하는 과정에서 장모 등의 차명 계좌를 이용한 것과 관련된 금융실명법위반죄도 있다.

진 검사장 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을 대부분 부인했다. 변호인은 “뇌물을 받았다는 부분은 직무관련성이 없어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금품수수나 재산상 이익 취득을 (하나로 묶어서) 포괄죄로 기소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진 전 검사장이 넥슨측으로부터 받아온 주식·차량·여행경비 등은 개별 사안이라는 설명이다. 이를 하나로 묶게 되면 이미 공소시효가 끝난 혐의에 대해서도 기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진 전 검사장 측 변호인은 또 “넥슨재팬 주식 취득이나 그 이전에 넥슨 주식 매입 기회제공은 특별히 피고인에게만 제공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뇌물성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진그룹 수사 무마 대가로 가족 명의 업체에 일감을 몰아달라고 청탁한 혐의에 대해서는 “피고인(진 전 검사장)의 처남을 (한진그룹 측에) 소개한 것에 불과하다”며 “그 과정에서 부정한 청탁이 없었기 때문에 제3자에 의한 뇌물수수죄는 성립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다만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와 관련된 사실 관계는 모두 인정했다.

김 회장 변호인 측의 태도는 지난 12일 열린 공판준비기일과는 달라졌다.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내용에 나온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여부는 법리적 판단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공판준비기일에서 “주식 관련 4억2500만원은 뇌물에 해당한다”고 진술한 것과 상반된 주장이다.

그러면서 변호인은 “(검사측은) 2005년부터 약 10년간 28회에 걸친 혐의를 모두 실정법상 하나로 봤다”며 “주식, 차량, 여행경비 제공 등은 각각의 계기와 방법이 다르고 시간적 간격 또한 있어 계속된 의사로 표현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 측 변호인도 진 전 검사장 변호인과 마찬가지로 ‘포괄죄’ 적용에 대해서는 법리적 판단이 필요하다는 태도였다. 변론을 들은 김 판사는 “사실관계는 인정하지만 뇌물죄 성립에 필요한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부분은 법적 판단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해하겠다”고 답했다.

이날 첫 증인으로는 넥슨에서 2000년 6월부터 재경팀장을 맡아 주식관리 등 업무를 해오던 한모씨가 법정에 섰다. 검찰은 한씨에게 2005년 10월경 진 전 검사장이 김 회장으로부터 넥슨 주식을 사기 위해 4억2500만원을 받는 과정에서 실무자로서 김 회장에게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집중적으로 물었다. 김 회장과 한씨 사이에 주고 받은 이메일 내용 등이 증거로 제시됐다. 한씨는 “진경준에게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검찰 질문에 “특혜성 판단은 제가 할 수 없다”고 답했다. 한씨에 대한 검찰의 신문이 계속되는 동안 김 회장은 고개를 숙인 채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다음 2차 공판기일은 10월 11일 오전 10시 같은 법정에서 열린다. 3차 공판기일인 10월 20일까지는 검찰 측이 신청한 증인 신문이 이어질 예정이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