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법 CP 발행 혐의' 윤석금 웅진 회장 첫 공판
“교과서에 나오는 기업인이 되려고 투명경영을 실천해왔습니다.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지만 개인적 욕심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1000억원대 기업어음(CP)을 편법 발행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으로 기소된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사진)은 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판사 김종호)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배임에 고의가 없었음을 강조했다.

윤 회장은 변제 능력이 없는데도 1000억원대 CP를 발행하고 계열사를 불법 지원해 회사에 1000억원대 손해를 끼친 혐의 등으로 지난해 8월 불구속 기소됐다. 검찰은 당시 불법 행위로 인한 피해 금액이 크지만 윤 회장이 사적으로 취한 이득이 없고 자신의 재산을 출연해 기업 정상화를 도모한 점 등을 고려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계열사 대표 선처를”

윤 회장은 재판장이 발언 기회를 주자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해 물의를 빚어 죄송하다”고 운을 뗀 뒤 “30여년 동안 기업을 운영하면서 거래처 선정에 한 번도 개입한 적이 없을 정도로 투명경영을 해왔다”며 자신의 경영관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언론에서 연일 ‘사기성 CP’라고 보도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나를 사기꾼으로 볼 것 같아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며 “내 잘못으로 검찰에 전·현직 직원들이 줄소환돼 괴로웠다”고 토로했다. 이어 “법을 잘 몰라 법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일을 했을 수는 있지만 여지껏 비자금을 조성한 적도, 탈세한 적도, 불법적인 지시를 내린 적도 없었다”며 “잘못이 있다면 함께 기소된 계열사 대표들이 아니라 내게 있으니 이 분들에게는 선처를 부탁한다”고 덧붙였다.

○“경영상 판단 인정해야”

윤 회장의 변호인단도 “경영상 판단이었다”며 검찰의 공소 사실 대부분을 부인했다. 검찰은 2012년 7~8월 1000억원 상당, 같은 해 9월 198억원 상당의 CP 발행을 두고 “CP 만기가 돌아오자 이를 갚으려고 사기성 CP를 발행했다”고 주장했으나 변호인단은 “이 사건은 재판부가 경영상 판단을 인정해줘야 할 대표적인 사례”라고 맞섰다.

CP 발행 당시 웅진코웨이를 매각해 CP를 상환할 계획이었으므로 변제 의사 및 능력이 있었던 만큼 배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변호인단은 다만 2009년 3월 웅진그룹 계열사인 렉스필드컨트리클럽의 법인자금 12억5000만원을 토지 매입 컨설팅비 명목으로 인출한 뒤 웅진그룹 초창기 멤버에게 위로금으로 지급한 혐의 등은 부분적으로 인정했다.

김종호 부장판사는 “윤 회장 등 경영진이 사익을 추구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 같다”며 “이 사건은 개인적 기억에 의존한 진술로 좌지우지될 사안이 아니므로 거래 관계가 명확하게 나와 있는 서증(서면의 존재·의의를 증거로 삼는 것) 조사를 치밀하게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