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공관 100m 이내 집회금지' 규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자마자 대사관 주변에서 집회를 열겠다는 시민.사회단체의 신고가 경찰서에 쇄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단체가 1년 이상 장기집회 신고를 내거나 노조측의 집회를 막아보겠다는 기업측의 `방어집회' 신고가 이어져 외교공관 인근에서 평화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집회는 보장하겠다는 헌재의 결정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장기간 집회신고를 내 다른 단체의 집회개최 권리마저 제한하는 집회문화를 개선하고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장기.방어 집회 쇄도 = 외교공관 인근 집회금지 규정은 위헌이라는 헌재의 결정이 나자 사회단체와 기업측의 집회신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당장 집회를 열어 자신의 주장을 전달하겠다는 정당한 취지의 집회보다는 집회장소를 선점해 놓고 보겠다는 `보험성 장기집회'와 `방어집회'가 대부분이었다. 이처럼 집회장소 선점경쟁이 벌어진 까닭은 현행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상 옥외집회를 하려면 기간제한없이 누구나 집회 48시간전에 경찰에 신고하면 되고, 이경우 다른 사람이나 집단은 같은 장소에서 집회를 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대림산업은 `원활한 기업활동 보장'이라는 집회명으로 내달 3일부터 내년 12월31일까지 미 대사관 정문 앞을 비롯해 대사관을 둘러싼 주변도로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해 1년여동안 대사관 주변 집회를 독점했다. 민주노동당도 세종문화회관 앞,정부중앙청사 별관 앞,광화문 전화국 앞 등 3곳에 `올바른 한미관계 쟁취를 위한 집회' 명칭으로 내년 12월31일까지 재빨리 집회신고를 냈다. 또 흥국생명 총무팀은 `자사상품 판매를 위한 직원 결의대회' 명칭으로 흥국생명 후문에서 내년말까지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고, 흥국생명 노조도 고용안정과 단체협약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 명목으로 본사 앞에서 내년말까지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신고했다. 이렇게 되자 흥국생명 사측은 2005년 한해 동안 빌딩 정문과 후문에서 집회를열겠다는 신고서를 또 제출했다. 또 엘살바도르 대사관이 입주해 있는 삼성생명 빌딩 주변의 집회 선점을 위해삼성생명과 삼성생명해고자복직투쟁위도 경쟁을 벌였다. ▲집회문화 개선 시급 = 이처럼 외국공관 주변 집회신고가 장기집회, 방어집회등 선점경쟁으로 얼룩지자 정작 필요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단체의 집회권리를 침해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은 또 필요에 따라 적당한 기간만큼 집회신고를 내는 것은 시민사회의 상식인 만큼 집회문화의 개선과 집시법의 손질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임준태 교수는 "집시법은 집회.시위 자유보장이 큰 목적이기 때문에 과도한 제약은 법의 취지를 훼손시킬 수 있지만 집회문화 개선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한 장소에 장기간 집회신고를 내는 것은 타인의 집회 자유를 침해하는 행동"이라며 "프랑스에서는 최장 15일동안 집회를 열 수 있고 그 다음에는 다시기간을 갱신토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장기집회 신고를 해두고 실제로 하지 않는 신고자에대해서는 과태료를 물리거나 경찰에 집회 미개최 통보를 하도록 집시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 교수는 또 "집시법은 지난 89년 여소야대 시절 집회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방향으로 전면 개정됐지만 현재 집회문화는 국가권력 대 시민의 구도보다 노사 등 이해관계집단의 대결구도가 많은 만큼 달라진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도 "집회를 진행하지도 않고 1년동안 하겠다고 신고하는경우는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라며 "정부는 이런 부분에 대해 법 개정을 통해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고 실장은 또 "집회 신고 주체와 목적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산하 여러단체가 이를 이용해 집회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시위를 벌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신고시집회 주체와 목적을 좀 더 명확히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정윤섭기자 jamin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