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분업 실시 이후 2차진료기관들이 잇따라 도산한데 이어 그동안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대학병원에서도 교수들의 잇단 사직과 불만고조 등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의료계에서는 별다른 대책없이 이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수년내에 의대 교수들의집단이탈로 교수수급 문제 등이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양대 김종량 총장은 지난달초부터 1주일에 사흘은 의료원 8층으로 집무실을 옮겨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신속한 의사결정을 통한 업무처리 효율화'가 이유지만 내부에선'동요하는 병원내부의 민심을 다독이기 위한 가시적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학교 의료원은 지난해 류머티스 전문의로 유명한 김성윤 교수가 개원의로 나간데 이어 성형외과 교수 3명도 학교를 떠나 구리병원 성형외과는 폐쇄됐다. 최근에는 안과와 신장내과에서 1명씩 나갔고 이달중으로 일반외과 교수 한명이사임할 예정이다. 다른 대학병원들도 교수진 이탈에 따른 고민은 마찬가지다. 고려대 병원은 올해이비인후과와 일반외과, 임상병리과에서 각각 1명의 교수가 개원 등의 이유로 학교와 병원을 떠났다. 울산대 의대 교수들이 진료하는 서울 아산병원은 의약분업 실시이후 내분비내과와 안과 전문의가 나간데 이어 지난달에는 피부과의 한 교수도 교수직을 사임했다.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들었던 가톨릭대 강남성모병원의 안과 의료진이 대거 병원을 빠져나간 사실은 의료계에서는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의사들의 이탈이 아직까지 본격화 한 것은 아니지만 대학병원가에서 체감하는 위기는 사뭇 심각하다. 서울 아산병원의 한 관계자는 2일 "예전같으면 대학병원 교수직을 그만둔다는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올 한해에만 교수급 의사 300명중 3명이 나간 사실이병원 내부에서 작지 않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직 의사들은 이처럼 '의대교수 이탈'의 원인으로 개원의에 비해 상대적으로저조한 의보수가 외에 의료사고 위험이 항존하는 대형병원의 고충과 개인적 비전을찾기 힘든 대학병원 내의 분위기를 꼽는다. 고려대 병원 흉부외과 선 경 교수는 "힘든 직업이지만 보람을 찾겠다는 의사들이라 해도 뚜렷한 비전과 재투자가 없는 상황이 이어져 '돈보다 사명이 중요하다'는식의 도덕적 비난이 어려운 게 요즘 분위기"라고 전했다. 한양대 흉부외과 김 혁 교수는 "요즘 식사시간을 보장받지 못하는 직업이 몇이나 되겠느냐"며 "중환자가 있으면 약속도 미루지만 정작 환자에게 문제라도 생기면가족들에게 멱살을 잡히기 일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같은 병원 성형외과의 김정태 교수는 "외국학회에 논문을 발표하고 싶어도 항공료는 커녕 보조금 40만원이 전부인 현실에서 대학교수로서의 자부심은 포기한지 오래"라며 "교수의욕 저하와 병원 분위기 침체라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강대 법학과 왕상한 교수는 "전문성이 결여된 의료정책 담당자들이전문가들의 조언을 듣지 않고 정책을 추진한 것이 문제의 근원"이라며 "문제해결을위해 공무원의 태도변화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상희기자 lilygardener@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