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인근의 한 아파트 전경 사진=이송렬 기자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인근의 한 아파트 전경 사진=이송렬 기자
올해 들어 집주인들이 '내 집'을 두고도 못 들어가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세입자에게 내줄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지 못하면서다. 집주인들이 보증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강화된 대출 규제 영향이 크다. 집주인들의 자금 계획이 꼬이자 세입자들도 난감하긴 마찬가지다. 일선 부동산 중개 업소 관계자는 "집주인 자금 조달 문제로 집주인뿐만 아니라 세입자 등에게도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고 설명했다.

22일 일선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런 사례는 올해 들어 심심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새 아파트가 대거 입주하면서 매물들이 많은 강동구 일대에서는 이러한 경우가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강동구 고덕동 A 공인 중개 대표는 "지난해 말 시중은행들이 대출을 조이자 전세 퇴거 대출을 받지 못했던 실수요자들이 올해 들어 다시 '전세퇴거대출'을 알아보고 있다"며 "작년 말에는 은행들이 대출을 조이면서 대출을 못 받은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 들어서는 DSR 규제로 인해 대출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세입자 보증금 내줘야 하는데…집주인 '난감'

상일동 B 공인 중개 관계자도 "최근 전세퇴거대출을 실행해 집주인이 들어온 사례 중에 전세보증금이 5억원이었는데 시중은행에서 3억원 후반대로 대출이 나온 경우가 있었다"며 "나머지는 제2금융권 등 자력으로 조달해 들어온 것으로 안다. 일부 실수요자의 경우 DSR 규제로 원하는 만큼의 자금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헬리오시티를 비롯해 대단지 아파트가 대거 포진한 송파구 일대도 마찬가지다. 송파구 거여동에 있는 C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집값 급등기에 전세를 끼고 집을 샀거나, 직장 등으로 어쩔 수 없이 본인 집을 두고 전세를 사는 사람들이 전세퇴거대출을 많이 이용한다"며 "작년 말에만 반짝 대출이 안 나왔지 이런 수요는 꾸준히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에 아파트 급매 및 전세 상담 안내문이 붙었다. 사진=뉴스1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에 아파트 급매 및 전세 상담 안내문이 붙었다. 사진=뉴스1
집주인들이 자금 계획이 틀어지면서 세입자들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집주인이 실거주 통보를 해온 한 세입자는 "집주인이 실거주한다고 해서 이사갈 집을 부랴부랴 찾아서 준비를 마쳤는데, 갑자기 자금 사정에 문제가 생겼다더라"라며 "집주인이 그냥 전세계약을 갱신해 다시 들어와서 살 계획이 있는지 물어왔다"고 했다.

또 다른 세입자도 "집주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전세 만기 두 달 전에 연락해왔다"며 "대출 여부 때문에 빠듯하게 연락했다며 양해를 구했는데, 최소한 집 구할 시간을 줘야하는 것 아닌가"라며 토로했다.

상일동에 있는 D 공인 중개 관계자는 "집주인이 자금 계획에 문제가 생겨 세입자까지 영향을 주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자금 계획이 꼬일 것 같다면 미리 세입자에게 얘기해 혼란을 피해야 하는 게 맞다. 실거주를 하기 전 미리 대출 등을 알아본 이후 확실할 때 퇴거 요청을 하는 것이 방법"이라고 했다.

"작년엔 대출 가능했는데…" 집주인이 집 못 들어가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금융권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면서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의 '대출을 줄이라'는 권고에 따라 일부 은행들은 신규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않고, 전세 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신용대출 등도 한도를 정해 운영했다. 1년 동안 실행할 수 있는 대출 총량이 있는데, 이미 실행된 대출이 이에 가까워지면서다.

작년엔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들의 문제로 대출이 어려웠다면 올해는 DSR 규제가 실수요자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DSR 규제는 대출받는 수요자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의 일정 비율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올해 들어 총대출액이 2억원을 넘으면 대출자가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원금과 이자가 연 소득의 40%를 넘지 못한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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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세퇴거대출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내줘야 하는데 자금이 없을 경우 이용하는 상품이다. 은행으로선 목적만 다를 뿐이지 집을 살 때 받는 대출과 똑같은 주택담보대출이다.

2019년 12월16일에 발표한 대책에 따라 KB시세가 15억원을 초과하는 주택을 대책 이후에 매수했다면 전세퇴거대출은 불가능하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실수요자 피해를 예상해 전세퇴거대출은 예외사항으로 했다. 하지만 집을 매수할 때는 대출을 금지하고 전세퇴거대출을 허용하는 것은 갭투자를 오히려 장려하는 것이라는 비판이 일자 예외조항에서 제외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