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 수색·증산뉴타운 옛 증산4구역 일대. 지난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곳은 사업 재추진 방식을 놓고 주민 간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경DB
서울 은평구 수색·증산뉴타운 옛 증산4구역 일대. 지난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곳은 사업 재추진 방식을 놓고 주민 간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경DB
지난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서울 증산동 205 일대(옛 수색·증산뉴타운4구역)에 벌써 재개발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그러나 구역지정 요건을 두고 주민들과 은평구청이 서로 다른 기준을 내세우고 있어 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을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재개발 방식에 대해서도 이견이 대립해 주민들이 사분오열되고 있다.

◆구역 재지정 추진하지만…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옛 증산4구역 주민들이 구역 재지정을 위해 입안제안 동의서를 걷고 있다. 입안제안이란 재개발을 원하는 주민들이 관할 구청에 정비구역 지정 의견을 내는 절차다. 제안이 접수되면 타당성 검토와 주민투표 등을 거쳐 구역 지정 수순을 밟는다.

일몰제 첫 적용 '증산4구역' 이번엔 사업 방식 두고 '갈등'
문제는 구역 지정 요건이다. 은평구청은 옛 증산4구역이 입안제안을 위한 요건조차 미달한다고 보고 있다. 건축물 동별 노후도와 구역 면적 기준은 채웠지만 나머지 선택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과소필지가 전체의 40% 이상이거나 접도율 40% 이하, 호수밀도가 헥타르(ha)당 60호(동) 이상이어야 한다”며 “서울시의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조례’에서 규정한 어느 한 가지도 충족되지 않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조건을 갖췄더라도 점수화된 주거정비지수를 다시 따져봐야 구역 지정이 가능하다.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는 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조례의 상위법인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시행령’에 명시된 선택요건을 이미 갖췄다는 것이다. 주민 A씨는 “노후불량건축물의 연면적이 전체 연면적의 3분의 2를 넘어 조건을 충족한 상태”라며 “다른 재개발 지역들도 이 같은 기준에 맞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 또한 “최근 서울시에 질의회신을 통해 이 같은 내용을 확인받았다”며 “입안요건이 되는 데도 불구하고 은평구청이 제대로 된 안내를 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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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구역 지정은 서울시 권한이지만 입안제안 접수와 검토 등 사전 절차는 각 구청이 담당한다. 결국 주민들이 재개발을 다시 추진하기 위해선 조례에서 규정한 선택요건을 채워야 하는 셈이다. 도로를 접한 주택수를 뜻하는 접도율은 구역 경계나 기반시설이 바뀌지 않는 이상 변화할 가능성이 없다. 저층 단독주택 대신 다가구주택을 지어 호수밀도를 높이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신축빌라가 거꾸로 구역 노후도를 낮출 우려가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신축을 늘리더라도 어느 시점에 밀도를 채울 수 있을지조차 요원하다”며 “최종적으론 조합원수가 늘어나 사업성도 떨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사업 방식 두고도 내홍

역세권 공공임대주택을 짓는 방향으로 재개발을 추진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용적률 인센티브를 받아 개발하는 대신 그 절반을 공공임대주택으로 짓는 방식이다. 앞선 주택정비형 재개발과 달리 도시정비형 재개발인 까닭에 구역 지정 요건이 비교적 간단하다. 이 같은 방식 또한 주민동의를 받아 입안제안 절차를 거쳐야 한다. 동의율은 50%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 B씨는 “불가 판정을 받은 기존 재개발 방식이 마치 가능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세력이 있어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서 “그동안 사업이 오래 지연돼 이번 대안이 마지막 재개발 기회”라고 말했다.

옛 증산4구역 일대를 수색·증산뉴타운(재정비촉진지구)에서 아예 빼내는 행정 절차도 진행 중이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역세권 공공임대주택 건립사업은 촉진구역이 아닌 일반구역으로 환원됐을 때만 가능하다”면서 “지난해 촉진구역에서 해제된 뒤 뉴타운에서 제척되진 않았기 때문에 재정비촉진계획 변경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평구청은 지난해부터 일대의 구역 해제에 따른 관리 방안을 수립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역세권 재개발에 걸림돌이 없는 건 아니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곳은 사업 대상지에서 제외하는 게 원칙인 까닭이다. 도시재정비위원회가 예외를 인정하는 경우에만 추진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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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처럼 해제된 정비구역에 대한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출구전략’을 두고 주민 갈등이 불거지거나 낙후한 상태로 방치돼 주거지역으로 기능을 하지 못할 우려가 있어서다. 그러나 서울시는 대안 사업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선제적으로 내놓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제구역의 사업추진은 주민들의 의견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 사항”이라며 “시 차원에서 따로 관리 방안을 마련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증산4구역은 2012년 재정비촉진구역으로 지정돼 재개발을 추진했지만 일몰제를 적용받아 정비구역에서 해제됐다. 추진위원회 설립 2년 안에 조합설립에 필요한 동의율 75%를 확보하지 못해서다. 일몰제로 해제된 정비구역은 증산4구역이 첫 사례다. 당시 추진위는 일몰 기한 연장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서울시와 은평구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그러나 대법원까지 간 끝에 패소하면서 지난해 구역해제 고시가 이뤄졌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