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에도 서울 인기 주거지역 재건축·재개발 단지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 최근 매도호가가 최고치를 기록한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한경DB
대선 정국에도 서울 인기 주거지역 재건축·재개발 단지 시세가 급등하고 있다. 최근 매도호가가 최고치를 기록한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한경DB
19대 대통령선거 기간에도 서울과 수도권 주요 아파트값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가능성이 큰 강남권 재건축시장과 강북 주요 지역을 중심으로 투자자 발길이 이어지면서 최고점을 경신하는 단지가 속출하고 있다. 부동산시장은 통상 대선을 전후해 관망세를 보였지만 현재는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면서 가격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9일 일선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주공1단지 전용면적 42㎡는 10억8000만원에 매물이 나왔다. 1주일 만에 2000만원 오른 가격으로, 지난해 10월 기록한 최고점(10억7000만원)을 넘어섰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정보에 따르면 이 아파트는 지난달 10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도 1주일 새 3000만~4000만원 오른 가격에 매매되고 있다. 분당·일산신도시 등의 일부 핵심 지역도 거래가 활발하다.
"대선 변수 없어요" 서울·수도권 집값 들썩…개포1단지 11억 육박
◆개포주공1단지 호가 최고치 경신

서울과 수도권 시장의 상승세는 강남 압구정·개포, 강동구 둔촌동 등 재건축 지역이 주도하고 있다. 정비사업 진행 속도가 빠르거나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설립되지 않은 초기단계여서 초과이익환수제 영향이 거의 없는 지역이다.

이르면 다음달 말 관리처분인가 총회를 여는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1단지는 최근 전용 42㎡ 호가가 10억8000만원까지 오르며 최고가를 경신했다. 지난해 10월 10억7000만원까지 오른 뒤 11·3 대책의 여파로 9억4000만원까지 떨어졌다가 다시 급격한 상승세를 타고 있다.

개포동의 이창훈 남도공인 대표는 이날 “개포주공1단지는 모든 평형대가 1주일 새 최소 2000만원씩 올랐다”며 “올해 관리처분인가를 신청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가격이 빠르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축 추진위원회조차 설립되지 않은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도 최근 전용 197㎡가 34억500만원에 거래된 이후 상승 기류를 이어가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중간층 매물은 36억원에도 팔지 않겠다는 분위기”라며 “올초까지 잠잠하던 신현대아파트도 잇따라 거래가 성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재건축 블루칩지역으로 떠오른 강동구에서는 둔촌주공아파트에 투자자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 2일 강동구청의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이주를 앞두고 있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관리처분인가를 전후해 매수 문의가 크게 늘어났다”며 “지난주를 기점으로 3000만~4000만원 올랐다”고 전했다.

서울 마포구, 성동구 등 강북의 시내 직주근접 프리미엄 지역도 상승세가 뚜렷했다. 마포구 신수동 ‘신촌숲 아이파크’ 전용 59㎡형은 최근 분양권 전매가 풀린 뒤 프리미엄 호가가 최고 1억원까지 올랐다. 인근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웃돈 8000만원 선으로 나오는 매물은 바로 거래되고 웃돈 1억원에 내놓은 매도자도 적지 않다”며 “매수 문의는 많은데 물건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성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성수 아이파크 전용 104㎡가 5월 황금연휴를 거치며 한 주 사이 호가가 5000만~6000만원가량 올랐다”며 “호가가 높아져도 매물이 없어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 분당, 일산 등 1기 신도시도 최근 거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재건축·리모델링 기대가 큰 시장이어서 대지 지분이 많고 용적률이 낮은 단지에 투자자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대선 변수보다 시장 환경이 좌우

통상 대선을 전후해 부동산 시장은 약보합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 방향을 가늠하기 위해 매도자와 투자자 모두 관망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는 대선 기간에도 뚜렷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지역 주택가격 매매 상승률은 11·3 대책이 발표된 지난해 11월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지난 1월 0.0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2월 0.05%로 반등을 시작한 뒤 지난달 0.23%까지 빠르게 회복됐다. 재건축 열기가 일기 시작한 지난해 4월 0.15% 선을 훌쩍 넘어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대선보다 저금리 기조와 공급 물량이 부족한 상황이 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은 신규 택지 자체가 부족한 데다 전국적으로 공공택지 개발마저 중단되면서 공급 물량이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센터장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이전보다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저금리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며 “공급 물량이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안전한 투자처를 찾는 베이비붐 세대의 유동자금이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하는 재건축 단지로 몰리는 모양새”라고 분석했다. 올 하반기 서울 강남 3구, 강동구 등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서울에서만 5만여 이주가구가 나온다는 점도 시장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유력 대선후보들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든 점도 시장에 호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WM 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부동산 투자에 대한 규제 공약이 별로 없어 대선 정국에도 안정적이면서 활기를 띤 투자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며 “가계부채 공약이 있긴 하지만 11·3 대책 이후 투자자가 심리적으로 적응한 상태여서 변수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수영/윤아영/선한결/설지연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