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일관되게 "민주적 시장경제"를 역설해 왔다.

정치적 민주화와함께 그가 한평생 이루고자 했던 것은 바로 경제의 민주화
였고 그것은 한마디로 "시장경제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가 경제의 민주화, 민주적 시장경제확립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민주화와
경제적 민주화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역사적 통찰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저서 "김대중의 21세기 시민경제이야기"에서 "정치는 외형상 민주화
됐지만 경제는 여전히 관주도형 권위주의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법치주의
가 아닌 인치주의가 지배하고 있어 진정한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를 통한 정치민주화의 완성"을 주창하고 있다.

김 당선자는 우리경제의 추락원인이 고임금 고금리 고지가 고물류비용
고행정비용 등 5고와 저기술 저부가가치 저효율의 3저 등 "고비용 저효율
구조"에 있고 그 뿌리는 "관치경제"라는 입장이다.

그는 김영삼정부가 출범이래 제도개혁과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으나 군사정권의 유산인 권위주의적 관치경제의 정책기조를 깨뜨리지 못해
근본적인 개혁과 규제완화에는 실패했다고 진단하고 경제정책 패러다임의
전환과 경제질서의 근본적 개혁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정부의 임무는 경제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고 가격기구가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확고한 사유재산권보장과 자유경쟁및 자기책임원칙에 입각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고 유지하는 것"이라는 김 당선자의 말은 그가 구상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내용을 시사한다.

분배문제에 대한 처방도 이같은 "탈관치경제"의 틀속에서 도출된다.

김 당선자는 부정부패와 독과점적 시장구조로 인해 시장소득자체가 원천적
으로 불공정하게 분배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시장의 원칙을 제대로 정립하면
부의 분배구조가 정상으로 돌아오고 이때 비로서 정부가 국민들에게 "고통
분담"을 설득력있게 호소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특히 김당선자가 공정거래위원회를 "공정경쟁위원회"로 개편, "하도급
검사관제"를 도입하는 등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철저히 제재하겠다고
공약한 것도 이런 주장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가 농민 노동자 중소기업에 대한 "애정"을 강조해온 것도 이들이 바로
왜곡된 분배구조의 피해자로서 권위주의정권과 결합하지 않는 민주화투쟁의
"동맹군"이 되고 정상적인 시장경제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신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때문에 자신의 저서조차 읽어보지도 않은 숱한 반대자들에 의해
그의 "대중경제론"은 "민중경제론"과 같은 좌파적 주장으로 매도당하는 등
숱한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독재정권아래서는 정치적 탄압이,그 뒤에는 편견과 선입견이 "무식한"
비판자들을 양산했다.

영남연고가 압도적으로 많은 대기업과 영남출신 집권세력간의 유착이
"김대중은 사회주의자"라는 검증되지 않은 구호를 내면화시키는 정치경제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또다른 측면에서는 박정희대통령이후 발생한 정치권력의 영남세력독점,
이런 정치권력에 의한 영남권기업키우기와 편중개발, 이에따른 특정지역의
사회문화적 우월의식과 소외의 확대재생산은 80년대 정치적 격변시기를
거치면서 "지역감정"을 심화시켰다.

이로인해 김당선자는 정치적 좌절을 선거때마다 겪어야 했다.

그의 인생역정이 군사독재정권과의 처절한 투쟁으로 그치지 않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경복합체 관치경제와의 싸움으로 이어진 것은 바로 이 때문
이라는게 김 당선자측근들의 지적이다.

따라서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정적과 광범위한 이미지조작에 영향받은
반대자들에 의해 "빨갱이"로 몰린 김 당선자가 "반기업적 사고를 가진
정치인"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불식하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자유주의자의
면모를 과시한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민주적 시장경제론은 정치적 포위망을 와해시키는 전략으로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제건설의 "청사진"으로 제시됐다는 점에서 김 당선자의
임기전반을 관통하는 신정부의 철학과 원칙으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이 경제구조개혁을 요구하고 있는 현경제상황은
김 당선자에게 저항을 최소화하면서 철학과 원칙을 실현, "경제재건의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허귀식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