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가 정상회담에서 핵협의그룹(NCG) 신설 등 대북 억제책을 내놓자 북한이 막말을 쏟아내며 도발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김여정은 “워싱턴 선언은 침략적 행동 의지가 반영된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집약화된 산물”이라며 “핵전쟁 억제력의 제2 임무에 더욱 완벽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신했다”고 했다. 7차 핵실험뿐만 아니라 ‘핵 선제타격’에 나설 수 있다는 협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 대해선 “늙은이의 망언”이라고 했고, 윤석열 대통령을 향해선 ‘못난 인간’이라는 등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노동신문 등 기관지를 동원해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공격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대북 압박책이 나오게 한 원인 제공자는 다름 아닌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방어가 어려운 회피 기동, 고체연료 방식 등 허를 찌르는 온갖 종류의 단·중·장거리 미사일을 쏴댔다. 전술핵탄두 공개, 핵어뢰 수중 폭발 및 핵탄두 공중 폭발 시험까지 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주일 미군기지, 미국 본토까지 위협당하는 마당에 정상적인 국가라면 대비해야 마땅하다. 당연한 자위적 방어 조치에 대해 빌미를 제공한 쪽에서 “핵전쟁 책동”이라고 하니 황당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이런 거친 반응은 초조함의 발로로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도발을 감행할 수 있는 만큼 만반의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관영 매체를 동원해 한·미가 확장억제 조치들을 이행할 경우 중·러·북의 3자 연대 차원의 보복을 마주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한국이 균형 외교에 일대 변화를 선언했고, 미국의 팔에 안길 준비가 돼 있음을 보여줬다고도 했다. 중국 스스로 ‘한·미·일’ 대 ‘북·중·러’ 대결 구도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외교부는 “한·미 핵합의는 국제질서를 더 불안하게 하고 군비경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했다. 중·러 모두 적반하장이다. 한·미의 확장억제 업그레이드가 북한의 도발 때문이라는 사실에는 애써 눈 감고 있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 수위를 높여가는 것도 중·러가 뒤에서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두 나라 모두 동북아 긴장의 근원적 원인에 책임이 있다는 얘기다. 북·중·러가 한·미 정상회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역으로 워싱턴 선언이 그만큼 효력이 있다는 방증이다. 안보에서 한·미, 한·미·일 협력을 더 다져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