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운명공동체'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집권 연장에 성공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대만 점령이 중국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선언했다. 전체주의는 권력의 집중을 부르고 독재자는 민족주의적 열정을 부추겨 압제적 통치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므로,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은 아니다.

‘대만의 독립은 허용할 수 없다’던 입장에서 ‘대만을 무력을 써서라도 점령하겠다’는 입장으로 바뀐 것은 중대한 변화다. 이런 변화가 품은 함의들은 심각하다. 군사 전문가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예상보다 훨씬 빠를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의 안보를 근본적 수준에서 위협한다. 지금 동북아시아에선 자유주의 세력과 전체주의 세력 사이에 뚜렷한 전선이 자리 잡았다. 대만해협에서 한반도의 휴전선을 거쳐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소야해협에 이르는 이 전선의 남쪽엔 대만, 한국, 일본의 자유주의 세력이 있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 북쪽엔 중국, 북한, 러시아의 전체주의 세력이 있다. 당연히 대만에 대한 중국의 위협은 이 전선 전체에 미친다.

이 전선은 실은 중화민국이 대만에 정착한 1949년에 형성됐고, 한반도의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뀐 것 말고는 그대로 유지됐다. 한국전쟁을 겪고도 70년 넘게 전선이 유지됐다는 사실은 동북아시아의 정치적 지형에 대해 여러 얘기를 들려준다.

그런 얘기 가운데 하나는 대한민국과 중화민국 사이의 오랜 인연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중화민국의 지속적 도움을 받아 활동한 것은 잘 알려졌다. 1949년 내전에서 진 중화민국이 대만에 정착한 뒤엔 두 나라는 실질적으로 ‘운명공동체’였다. 1949년의 진해회담에서 장개석 총통과 이승만 대통령은 이 점을 확인했다.

1950년 1월 딘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남한과 대만이 미국의 방위선 밖에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침입에의 초대’에 응해 북한군이 남침했다. 예상과 달리 트루먼 대통령은 주일미군을 한반도에 투입했고 7함대를 대만해협으로 보냈다. 그는 한반도와 대만이 군사적으로 하나임을 인식한 것이었다.

실제로, 북한군 3분의 1은 중공군 출신이었다. 그들은 뿔뿔이 북한군에 들어온 것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편입됐다. 북한군 5, 6, 7사단은 아예 중국에서 편성돼 뒤의 이름만 북한군 편제를 따랐다. 즉 중국은 대만의 중화민국과 한반도의 대한민국을 동시에 정복하려 했다. 한반도에 개입한 중공군이 끝내 대만을 공격하지 못한 것은 미군 7함대에 맞설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상황은 같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한반도도 무사할 수 없다. 중국은 북한으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공격에 나서도록 할 것이다. 실은 중국의 대만 침공은 북한의 남한 공격으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묶인 사이에 중국은 대만을 점령하려고 할 것이다.

두 나라 시민들이 인식하든 외면하든, 대한민국과 중화민국은 오래전부터 ‘운명공동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느 한쪽에 전쟁이 일어나면, 다른 쪽도 전쟁에 휩싸일 것이다. 이런 인식을 두 나라 시민들이 공유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북한이 우리를 공격해올 때 결정적 요소는 북한의 핵무기다. 우리가 핵무기를 갖지 못하는 한 미국이 약속한 핵우산은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묶어 놓을 것이다. 동북아시아 주둔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위해서라도 한국이 북한의 핵무기에 독자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은 바람직하다.

지금 미국이 대만의 안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사이의 군사력 격차는 점점 줄어든다. 특히 미국이 대만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중국의 능력은 빠르게 향상된다. 한국이 북한에 맞설 만한 핵전력을 갖추도록 하는 일은 대만의 방위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

미국의 전략과 외교 책임자들에게 한반도는 우선순위에서 유럽이나 중동에 밀린다. 그래서 미국 관료들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 늘 미봉책을 따른다. 그들과 협상해 우리의 핵전력을 갖추려면, 대만과 한반도가 긴밀히 연결되었으며 한국의 군사적 능력의 확충은 대만의 안보에 실질적으로 기여한다는 사실을 먼저 일깨워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