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전쟁 와중에 러시아가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올겨울 글로벌 에너지 대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가 유럽 가스시장의 수급 불안을 야기하는 차원을 넘어 석유와 석탄, 전력 등 국제 에너지 시장 전반에 수급 불안 심리를 한껏 가중시키는 상황이다. 당장의 관심사는 오는 21일로 예정된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 수송 재개 여부다. 러시아는 정기점검을 이유로 독일을 거쳐 유럽 각지에 가스를 공급하는 수송관 노르트스트림1의 가동을 지난 11일부터 중단했다.

이 가스관이 폐쇄되면 막대한 유럽의 가스 수요가 미국과 중동으로 몰리게 된다. 한국을 비롯한 중동산 가스 수입국은 곧장 물량 부족에 직면할 것이다. 최근 국제금융센터가 올겨울 가스 가격 폭등과 공급 대란을 걱정하는 보고서를 낸 배경이다. 보고서는 러시아의 가스관 봉쇄로 유럽 천연가스 시장 선물가격이 연초에 비해 177%, 최근 한 달 새 121% 폭등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지금은 유럽 가스시장이 러시아의 볼모처럼 됐지만, 찬 바람이 불 무렵에는 세계시장이 러시아만 바라보는 위기에 처할 것이다.

유럽 쪽의 에너지 위기감은 이미 심각한 지경이다. 독일에서는 무제한 속도로 유명한 아우토반의 최고속도를 시속 130㎞로 제한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자는 주장까지 나오고 가정에서는 월동용 땔나무를 미리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유럽 국가들뿐 아니라 중국의 석탄·LNG 사재기도 이미 구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대변혁기에 무사한 겨울나기를 각국이 정부 차원에서 도모하는 것이다.

다행히 21일 가스관이 재가동되면 한시름 놓긴 하겠지만 우크라이나전쟁 상황에 따라 유럽으로 향하는 가스관은 언제 닫힐지 모른다. 천수답 농사짓듯 푸틴의 선의만 기다리며 겨울을 맞을 수는 없다. 글로벌 에너지 대란이 일정 한계선을 넘어서면 주가와 환율, 산업계에 연쇄적 충격파가 쓰나미처럼 밀려들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것은 우리 힘으로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물량 확보는 우리 의지와 역량에 크게 좌우되는 문제다. 정부가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할 시기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외교부가 총력전을 펼치고, 필요하면 부문별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라도 구성해야 물량 부족 사태를 면할 수 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