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어제 내놓은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는 금융 불균형이 얼마나 심각한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집값 상승률, 소득 대비 집값 비율 등으로 산출하는 ‘금융취약성지수 부동산 부문’이 올 3분기 100으로, 역대 최고치라는 것부터 그렇다. 2000년대 중반 집값 급등기보다 지금이 더 거품이 심하다는 얘기다. 그 여파로 1845조원까지 불어난 가계부채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두 배 규모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6.5%로 국제결제은행의 권고 수준(85% 이하)을 훌쩍 넘겼다.

이어진 한은의 전망은 거의 ‘묵시록’처럼 들린다. 금융 불균형이 실질소득 감소, 소비 제약을 가져와 집을 팔려는 사람이 갑자기 몰리면 부동산 거품 붕괴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계 주요국 경제도 같이 흔들리는 최악의 경우, 1년 뒤 경제성장률이 -3.0%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5.1%) 이후 최악의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주택시장에서 그 전조가 일부 감지된다. 시장이 매도세 우위로 돌아서고, 서울 강남·마포 같은 선호지역에서도 실거래 가격이 1억~2억원씩 떨어진 사례가 잇따른다. 일각에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한국에서 재현될 가능성까지 우려한다. 여건은 일본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던 1990년대 세계 경제보다 지금이 훨씬 나쁘다. 지속되는 코로나 위기, 원자재 공급난, 인플레이션 위험, 금리인상 움직임, 세계 성장률 저하 등 도처에 위협요인이 가득하다. 거품이 한순간에 꺼질 경우, 경제가 쇼크에서 회복하기 힘든 상황이다. 급하게 올라도 문제지만, 집값 내리는 걸 마냥 반길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한 것이다.

물론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 측에 있다. 아무리 주택경기 호전 기대감이 컸다고 해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93.9% 오른 것은 비정상적이다. 수요 틀어막기 일변도의 규제책이 집값 상승을 더욱 부추긴 것이다. 이제 반대로 집값 급락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고민해야 한다면 정부의 무리한 시장 개입이 가격 변동성을 키울 위험부터 경계해야 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한시 유예 등 표 계산에 급급한 단기·대증요법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민 세부담 완화는 가계부채가 소비 등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게 차단하는 정도로 활용해야 한다. 길게 보고 시장 과열을 서서히 가라앉히는 정책 마련이 중요하다. 그래야 가계 파산과 연쇄적 금융 부실화, 일본식 거품 붕괴의 길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