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급 기업들이 속속 ‘미국 대관 업무’를 강화한다는 한경 보도는 시사점이 적지 않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부상하면서 미국 정부·의회를 상대로 회사 입장을 설명하고 필요한 정보를 제때 확보해야 하는데, 정작 우리 정부에는 기댈 게 없다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백악관 동향을 모르면 사업 유지가 어렵게 된 현실이 유감이지만, 현지에서 ‘미니 정부’ 역할을 해야 할 주미대사관을 비롯한 관계 부처들은 무엇하고 있나.

LG그룹까지 내년부터 ‘워싱턴DC 사무실’을 운영하면 4대 그룹은 전부 미국에서 독자적 대관업무를 벌이게 된다. 같은 계획을 세운 CJ, 기존 인원을 배로 늘린 한화를 비롯해 인력보강과 조직확대에 나선 한국 기업은 한 손으로 다 꼽기도 어렵다.

첨예한 미·중 갈등 속에 통상·산업, 기술·정보 등에 걸쳐 심화되는 보호주의 기반의 ‘미국 중심주의’가 주요인일 것이다. 글로벌 공급망의 주도권을 잡고 경제와 안보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전략이 바이든 행정부 이후 더 현격해진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전임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이 있었지만 방위비 분담, 무기구매 등으로 한국이 대처할 여지가 어느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출범이후 중국 압박과 자국 산업 보호는 더 강화됐다. 반면 한국 정부는 두드러지게 친중 행보를 거듭해왔다. 백악관과 의회 바로 앞에서 미국 조야를 자극한 일련의 주미 한국대사 발언부터 어떠했나. 이런 판이니 “외교부, 산업통상자원부, 국가정보원 다 뭐 하고 있나”라는 문제 제기는 하나마나다.

안에서 ‘기업 때리기’를 해온 정부가 밖에서도 보호막 구실을 못 하니 기업은 값비싼 비용 치르며 각자도생에 나선 셈이다. 가령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재고·판매·공급 정보를 내놓으라’는 백악관 압박에 협조하더라도 제공하는 정보 수준이나 속도의 완급 등에서 글로벌 경쟁업체들에 비해 최소한 불이익은 면해야 한다. 그런 게 국익이다. 하지만 ‘쿼드 가입’을 비롯해 미국과 거리를 둬온 한국 정부가 도움이 안 되니 기업들은 워싱턴 로비스트를 찾는 것이다.

기업이 낸 세금을 쓰는 정부가 도움은커녕 기업 인맥에 기대어 ‘무임승차’하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해외진출 기업에 현지 ‘의전 부탁’도 여전하다고 들린다. ‘미국서 새는 바가지’가 다른 나라에선 온전할까 싶다. 친중 행보를 펴면서 중국진출 기업에 바람막이가 되고 있는가 정부 스스로 자문해보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