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3000포인트 안착에 성공했다. 2000선에 오른 지 13년 만이다. 주가지수가 지루한 ‘박스피’를 벗어나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수준으로 뛰어오른 것은 어쨌든 축하할 일이다.

‘코스피 3000 시대’를 연 요인으로 단기적으로는 초저금리와 코로나19 지원으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 반도체 등 대표 업종들의 선전, 개인투자자들의 과감한 매수 등이 꼽힌다. 중장기적으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기업 경영을 포함해 사회 전반이 투명해진 점을 들 수 있다.

한국 증시는 오랫동안 경제규모에 비해 저평가돼 왔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북한 핵이라는 리스크와 불투명한 지배구조 등이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북한 문제를 상수로 치더라도 기업의 투명성은 외환위기 이후 20여 년간 괄목상대할 만큼 개선됐다.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제도가 정비된 데다 이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높아졌고, 기업들 스스로 투명경영에 주력한 결과다.

이제 다음 목표는 코스피 4000을 넘어 ‘선진 증시로의 진입’이다.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경제와 기업 위에 군림하며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정치를 개혁하는 일이다. 거대 여당은 ‘과잉 규제’라는 기업들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상법, 공정거래법,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데 이어 새해 벽두부터 과잉 입법 논란이 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복합쇼핑몰 규제법(유통산업발전법) 등을 계속 밀어붙이고 있다. 코로나 위기 극복을 위해 기업을 적극 돕지는 못할망정 사사건건 발목만 잡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이 ‘기업 때리기’에 열중하는 이유는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뿌리 깊은 반(反)기업 정서를 악용해 편을 갈라야 대중의 표를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정치권의 기업을 보는 시각이 아직도 공장노동 시대 노동법과 정경유착 시대 재벌규제 논리에 갇혀 있는 것도 그래서다.

하지만 세상은 빛의 속도로 바뀌고 있다. 2000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톱 10’ 중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삼성전자가 유일할 정도다. 기업도, 국민도 다 변하고 있는데 정치만 기득권에 안주해 퇴행적인 규제를 남발하며 경제의 혁신을 훼방놓고 있다. 이런 낡은 정치야말로 ‘코스피 4000 시대’를 가로막는 주된 장애물이며 또 다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유발하는 증시 최대 걸림돌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해 첫 국무회의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시대가 끝나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진정한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를 열려면 정치권이 시대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것이 규제개혁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코스피 3000 시대는 ‘유동성 파티’가 불러온, 한낱 사상누각으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