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항공 정유 자동차 해운 철강 등 기간산업이 줄줄이 유동성 위기로 치닫고 있다. 코로나 첫 확진자가 나온 지 4개월째로 접어들면서 현금 유입이 말라가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한계상황에 왔다’는 비명이 잇따른다. 항공사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인천국제공항 이용객이 전년 동월 대비 90%나 급감한 탓에 대한항공은 앞으로 두 달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는 평가다. 상환·차환해야 할 채무는 연말까지 4조원이 넘지만 자금시장 경색 탓에 회사채 발행 길마저 막혔다.

‘마이너스 유가’라는 충격에 정유업계도 기로를 맞았다. 원유 수요 부진과 정제마진 악화로 인해 제품을 생산할수록 적자폭이 커지고 있다. ‘4대 정유사’의 1분기 영업손실만 2조5000억원으로 추정된다.

한국의 강점인 중후장대 산업의 사정도 비슷하다. 두산중공업은 만기 도래한 대규모 해외채권을 국책은행의 긴급대출로 간신히 막았다. 현대·기아차는 해외 공장 18곳 중 6곳의 가동을 중단했다. 자동차·조선·건설발(發) 수요절벽에 철강업계 맏형 포스코도 창사 이래 두 번째 감산 위기에 몰렸다.

이런 상황에 이해하기 힘든 것은 차일피일 지원책을 미루고 있는 정부 태도다. 경제의 인프라가 훼손되는 치명적 결과로 치달을 것이란 우려에도 ‘대기업은 알아서 더 버텨보라’는 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과감하고 적극적인 재정투입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차례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지원책은 감감무소식이다. 자동차업계만 해도 기업어음(CP) 매입, P-CBO 확대, 수출금융 지원, 세금·보험 납부기간 유예 등 총 30조원 규모의 긴급지원을 요청한 지 두 주가 다 됐는데도 정부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속이 타들어가는 업계가 어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다시 만났지만 이번에도 ‘필요시 추가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원론만 되풀이했다.

주요국 정부의 대처는 정반대다. 미국은 지난달 말 2조2000억달러 규모의 ‘슈퍼 경기부양안’ 발표 시 ‘항공산업 긴급지원법’을 내놓았다. 대규모 보조금 지급과 면세방안이 담겼다. 자동차업계를 위해서도 연비규제 대폭완화 방안을 제시했다. 미국뿐 아니다. 독일은 국적기 루프트한자에 무한대의 금융지원을 약속했고, 싱가포르 대만 등도 대규모 대출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부실이 누적돼온 ‘좀비 기업’까지 다 살리자는 말이 아니다. 예기치 못한 재난을 맞은 가계에 긴급지원금을 주는 것처럼 기업에도 경영정상화를 위한 최소한의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는 의미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을 지휘한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제시한 ‘스탠드 스틸’ 해법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모럴해저드는 막아야 하지만 필요한 자금은 서둘러 지원해 ‘죽어가는 기업을 무조건 살리라’는 주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