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현상을 질병으로 규정하자 세계게임산업협회와 관련 단체들이 공동 성명을 냈다.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11차 개정안에 ‘게임이용장애’를 포함하는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게 성명의 요지다. 이들은 “WHO가 학계의 동의 없이 결론에 도달했다”며 “이번 조치가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부를 수 있다”고 염려했다. 특히 지금도 온갖 규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 국내 게임업계는 또 다른 규제 태풍이 몰려오지 않을지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WHO 결정이 발표된 다음날 게임이용장애 관련 민관협의체를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WHO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면 국내 게임산업의 피해액이 2023년 2조2064억원, 2024년 3조9467억원, 2025년 5조2004억원 등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란 서울대 산학협력단 보고서 따위는 알 바 아니라는 식이다.

복지부의 이런 반응은 ICD 질병 명단에 오르면 예방과 치료 예산을 배정할 수 있고, 게임회사에 공익기금 조성을 요구할 수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게임산업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도 “국내 일부 의사들이 게임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WHO를 조직적으로 공략했다”고 말했다. 한국중독정신의학회가 게임을 알코올, 마약, 도박처럼 규정하는 내용의 ‘중독 예방 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 개정안’을 지지했던 게 사실이다. 게임업계는 이 점에 주목해 “의학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게임 사용자들을 환자로 만든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처 간 의견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데다 관련 산업 위축이 불 보듯 뻔한데도 복지부가 자기 입장만 내세우는 것은 ‘조직 이기주의’로 볼 수밖에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국무조정실이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합리적인 방안을 찾으라”고 주문했다. 정부 내에서도 복지부의 과잉반응을 우려한다는 뜻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