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노포 주인만 서울시민인가
한경주거문화대상 수상업체들과 일본 도쿄에 와 있다. 재개발을 통해 랜드마크로 거듭난 건물들을 견학하기 위해서다. 긴자6 등 건물을 둘러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 둘러본 서울 을지로 세운상가 주변 재개발과 비교돼서다.

을지로 세운재정비촉진지구(43만8585㎡)에서 재개발 얘기가 나온 건 1979년부터다. 40년이 흘렀는데도 아직 재개발을 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 긴 세월 동안 원주민들은 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 개보수만 하면서 기존 건물을 사용해야 했다.

여기 건물의 72%는 1970년 이전에 지어졌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곳 3구역에는 화장실 없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볼일은 하수구나 지하철역 화장실 등에서 해결한다. 골목길은 오토바이 하나조차 겨우 들어간다. 불이 나면 소방차는 들어갈 엄두도 못 낸다.

40년째 재개발 제자리

건물 노후화와 함께 원주민의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인 데다 상권도 위축되다 보니 임대료가 20년째 떨어지고 있다. 현재 건물당 임대료가 적게는 월 3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 정도에 그친다. 건물주 이용규 씨(71)는 “25실 중 7곳만 빼고 다 공실”이라며 “월세를 안 내는 임차인도 있어 건물주들이 골치 아파한다”고 말했다.

요지에 땅이라도 갖고 있으니 부럽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원주민들은 속사정을 모르는 말이라고 일축했다. 세운3구역을 보면 전체 토지주는 618명이다. 토지주당 소유하고 있는 땅은 17.2평(약 57㎡)에 그친다.

원주민 김남술 씨(70)는 “땅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노인수당 40만원도 못 받는다. 빨리 개발해야 노후라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경연 씨(60)는 “월세를 30만원 받고 있는데 건강보험료만 27만원 나온다”고 했다.

곧 된다는 재개발이 강산이 네 번 바뀔 동안 지연되면서 파산하는 원주민도 계속 나오고 있다. 법원 경매시장에 세운상가 주변 물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토지를 담보로 생활비 등을 해결하다가 더 이상 못 버티는 사람들이다. 그동안 생활고 등으로 자살한 사람만도 둘이다.

"도시계획 손바닥 뒤집듯 하는 市"

원주민들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원망하고 있다. 손바닥 뒤집듯 정책을 바꾸면서 이곳 개발을 지연시키고 있어서다. 이곳을 광역개발하는 계획은 당초 2004년 세워졌다. 2011년 취임한 박원순 시장은 이 계획을 전면 변경한 새 계획을 2014년 내놨다. 기존 계획은 세운상가와 주변 지역을 8개 큰 구역으로 나눠 개발하는 것이었다. 박 시장은 중간에 있는 세운상가는 그대로 보존하고 세운상가 좌우는 171개 구역으로 쪼개서 개발하도록 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 시장은 지난주 갑자기 진행 중인 재개발의 인허가를 연말까지 중지시켰다. 구역 안에 있는 을지면옥을 강제철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을지면옥을 존치하면 그 주변 재개발은 물 건너간다. 땅 모양이 길쭉하게 자리잡고 있어 이곳을 빼면 재개발 자체를 할 수 없다.

일본 최고 번화가인 긴자엔 100년, 200년 이상 된 노포가 즐비하다. 이들 노포가 옛날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는 건 아니다. 건물엔 수명이 있다. 상황 변화와 도시계획에 맞춰 계속 변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대를 이어 전통을 이어가는 장인정신이다.

30년 조금 넘은 맛집 하나 지키자고 서울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활용해야 할 도심 알짜 땅의 개발을 막고, 수백 명 원주민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박 시장의 발상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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