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기업할 자유,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반대한다. 한·미 FTA 폐기는 일자리를 오히려 잃게 만들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 주(州)들도 피해를 입을 것이다. … 한·미 FTA 폐기는 미국 경제와 안보에 자해행위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책임한 행보를 멈춰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9월 한·미 FTA 폐기를 불사할 움직임을 보이자 미 상공회의소가 긴급히 낸 성명이다. 에두른 표현 하나 없이 선명하다. 미 상의는 각 회원사가 반대 행동에 돌입할 것을 촉구했다. 의회는 신속히 반응했다. 이 일로 트럼프가 미 상의에 경고를 보냈다는 얘기는 들어본 바 없다.

최근 트럼프는 규제철폐를 상징하는 ‘레드 테이프’ 커팅식을 연출했다. 국내 기업인들로서는 부럽다고 여겼을 법하다. 이 모든 게 찬성과 반대를 자유롭게 표출하는 문화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가장 유감스러운 장면 하나를 들라면 바로 떠오르는 게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임원이 “대기업의 정규직 과보호 해결 없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넘쳐나면 산업현장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는, 모두가 다 아는 문제를 제기했다가 혼이 난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경총은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이니 성찰과 반성을 먼저 하라”고. 그후 경제단체들은 일제히 침묵모드에 들어갔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기업에 대한 출연금 강요, 이권과 인사문제 개입 등과 관련해 “재산권과 기업활동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적시했다. 기업할 자유만 놓고 봐도 한국에서 위헌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할 정권을 찾기 어렵다. 지금도 기업할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기업이 언제까지 무소불위 권력에 굴복해야 하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할 게 있다. “우리는 자유 시장경제를 위해 얼마나 일관되게 목소리를 높이고 저항하고 있는가”를.

이 순간에도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할 게 있다. 정치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개헌 논의가 그렇다. 더불어민주당이 헌법개정안에 경제민주화 규정을 강화하는 쪽으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한다. 119조 2항 “경제민주화를 위해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에서 ‘할 수 있다’를 ‘한다’로 바꾸는 방안 등이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119조 1항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를 더욱 흔들겠다는 정치적 속셈 같다.

정부가 알아서 규제개혁을 해 주겠거니 기대하는 기업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꿈을 깨는 게 좋을 듯싶다. 켜켜이 쌓인 법령만 4000개에 달하는 판국이다. 제때 정비하지 않은 법령이야말로 진짜 ‘적폐’가 아니고 무엇인가. 헌법에서 경제민주화란 이름으로 규제가 당연시되고 나면 규제개혁은 완전히 물 건너간다. 기업할 자유는 그만큼 더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

기업이 규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꿔야 할 때가 왔다. 한국공학한림원이 개최한 ‘일류국가로 가는 법·규제 혁명’에서 “정부가 곧 국가라는 건 먼 옛날 얘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부가 독점하는 규제를 해체해 다시 디자인하라”는 제언이다. ‘시장’, ‘공동체’ 역시 국가의 중요 주체라는 점에서다. 한국 정치를 보면 “정치인이 국익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우연일 뿐”이라는 말이 전혀 이상하게 들리지 않을 정도다. 한마디로 기업이 ‘수동적으로’ 접근하는 한 규제개혁은 하세월일 수밖에 없다.

영국의 산업혁명이 정치혁명을 통한 ‘기업할 자유’ 확보가 선행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권력이 기업할 자유를 위협하는 한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은 불가능할지 모른다. 독일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은 ‘권리를 위한 투쟁’을 말했다. 권리 침해에 대한 저항은 자신은 물론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기업할 자유도 예외가 아니다.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