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7억개 가전이 AI 플랫폼"…빅테크 협업 줄섰다
“LG전자도 인공지능(AI) 기업이다.”

조주완 LG전자 사장(CEO)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LG는 가전’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발언이어서 전자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 사장의 자신감은 어디서 왔을까. 답은 글로벌 AI 산업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구글, 메타 등 빅테크가 훌륭한 AI 서비스를 개발해도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LG전자는 전 세계에 깔린 7억 대의 가전·TV와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AI 서비스의 기본 바탕이 되는 고객 관련 빅데이터도 확보했다. AI를 어떤 기업보다 소비자에게 잘 서비스할 수 있는 재료와 실력을 갖춘 기업인 것이다. 세계적인 AI 역량을 갖춘 구글이 LG전자와 ‘AI 로봇 동맹’을 맺은 것도 서로의 ‘윈윈’ 가능성을 높게 봤기 때문이다.

‘공감지능’ 비서 로봇

14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LG전자와 구글은 지난해부터 로봇 관련 협력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음달 27일 서울에서 열리는 ‘구글 클라우드 서밋 서울 2024’에서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를 적용한 서비스 로봇 ‘클로이’를 공개하고 올해 하반기 국내에 출시할 예정이다.

클로이는 LG전자의 AI 비전이 녹아든 대표적인 제품이다. LG전자는 AI를 ‘공감지능’으로 재정의하고, AI를 적용한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서비스 로봇은 인간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조한다는 점에서 LG전자만의 공감지능 기술을 가장 잘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업계에서는 클로이에 구글 AI의 특별한 기능이 담길 것으로 보고 있다. 오픈AI의 챗GPT 같은 챗봇 기능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티라노사우루스에 관해 물으면 ‘길이는 12m, 체중은 10t’이라는 구체적 답변을 하는 식이다. 텍스트나 설명을 입력하면 AI가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이미지 생성 기능도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안내용부터 배송·물류 가정용까지 방대한 로봇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가정용 로봇인 ‘스마트홈 AI 에이전트’는 복약 스케줄을 알려주면 정해진 시간마다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도 실린다. 외출에서 돌아오면 반려동물처럼 마중을 나가고, 주인의 목소리나 표정을 파악해 분위기에 맞는 음악까지 추천한다.

모세혈관처럼 뻗은 LG전자 생태계

LG전자의 최근 행보는 AI 시대 주도권이 소프트웨어 기업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올 2월 LG전자는 세계 최대 SNS 기업인 메타와 확장현실(XR) 동맹을 맺었다. 이달 조 사장이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를 만나 AI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가 몸집이 몇십 배나 큰 이들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모세혈관처럼 깔린 7억 대에 달하는 기기 덕분이다. 제품 사용 데이터만 7000억 시간을 넘어선 것으로 평가된다. 업계 관계자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자사 AI를 구현하고 학습시킬 매개체가 필요하다”며 “LG전자가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협업을 통해 LG전자는 미래 유망 사업에 보다 수월하게 진출하고, 이를 통해 빅테크 기업과 과실을 나눌 것으로 전망된다. 스카이퀘스트컨설팅에 따르면 글로벌 서비스 로봇 시장은 2031년 107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해 올해(31조5000억원) 대비 세 배 이상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자체 AI 역량도 고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품을 공동 개발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기업의 AI 노하우를 전수받고, 로봇·XR 기기의 핵심 소비층이 될 10~20대 소비자의 빅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어서다. 소비자 패턴 등을 알면 고객 맞춤형 신제품 개발에 보탬이 될 뿐 아니라 AI 경쟁력도 끌어올릴 수 있다.

LG전자의 플랫폼 전략은 로봇, XR 기기를 넘어 가전으로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선 조 사장과 나델라 CEO가 LG전자 가전에 MS의 생성형 AI를 장착하는 방안을 협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의명 기자 uim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