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의 아지트 파이 위원장이 망(網) 사업자가 망을 이용하는 콘텐츠나 서비스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망중립성 원칙’을 폐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망 중립성 준수를 강조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달리, 급증하는 트래픽을 해결하려면 콘텐츠 사업자도 망 비용의 일정부분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 데 따른 조치다. AT&T 등 망 사업자는 환영하고 나섰지만 구글 등 IT 기업은 반발하고 있다. 다음달 FCC 전체회의에서 망 중립성 폐기가 확정되면 상당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망 중립성 원칙이 그 취지와 달리 규제적 측면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망 중립성 규제가 통신사의 망 신규투자를 감소시켰고 일자리 창출 기회도 앗아갔다는 주장이다. 시급한 과제로 등장한 망 고도화가 이번 조치의 주요 배경임을 짐작하게 한다. 미국의 이런 움직임은 한국으로서도 남의 일일 수 없다. 국내에서도 정부의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을 둘러싸고 통신회사, 콘텐츠 사업자 등 업계 간 이해가 엇갈리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망 중립성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 중립성은 단순히 업계 간 갈등이나 공약 차원에서만 볼 수 없는 근본 문제를 안고 있다. 지금처럼 데이터 트래픽이 폭증하는 추세를 감안할 때 기존 망이 얼마나 견디겠느냐는 점이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을 생각하면 특히 그렇다. 여기에 구글 등 글로벌 IT 기업까지 국내 망에 ‘무임승차’하는 판국이다. 망 투자는 오로지 사업자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면 ‘공유지의 비극’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다. 트래픽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온다.

더구나 국내 정치권은 통신요금마저 내리라고 압박하는 중이다. 망 중립성에 강제적 통신요금 인하가 겹치면 5세대 통신망 구축은 고사하고 망 황폐화가 더 빨리 올 것이다. 문재인 정부도 미래를 내다보고 망 중립성 규제를 재고해야 할 때다. 망 사업자, 콘텐츠 업체 등이 시장에서 합리적 비용분담 방안을 찾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