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기업인 사면해 경영일선에 서도록 해야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광복절 특별사면 방침을 밝혔다. 사면 목적으로 경제적 위기를 거론하며 “희망의 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새누리당은 지금이야말로 “경제와 민생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힘과 희망이 필요한 시기”라며 기업인들이 포함될 수 있음을 내비쳤다. 반면 야권은 “기업인과 재벌을 풀어주는 특사, 여당 권력에 가까운 사람들을 풀어주는 특사”라며 사면권 남용이 아닐 수 없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기업인 사면은 원칙에 입각하되 유연하게 접근해야 한다. 우선 우리 경제의 위기 양상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경제위기는 ‘금융발(發)’ 위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랬다. 실물경제가 튼실했고 재정건전성이 확보됐기 때문에 수출에 박차를 가하고 확대재정을 통해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경제위기는 ‘실물발 복합위기’다. 과거 먹거리를 제공하던 주력 산업의 쇠락이 위기의 원천이자 본질이다. 박근혜 정부 들어 경제성장률 평균은 2.93%로,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3.0%를 뚫고 내려왔다. 이 정도 성장률도 재정의 조기집행, 추경예산 편성 등 재정보강 패키지의 도움을 받은 결과다. 재정보강 없이는 성장률을 관리할 수 없을 만큼 우리 경제는 ‘재정중독’에 빠져 있다.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다. 과거 한국 경제의 견인차이던 수출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주력 산업 위축으로 예전만큼의 기여를 기대할 수 없다. 내수도 가계부채에 발목이 잡혀 여력이 없다. 여기에 구조조정이 지체되면서 자체 생존능력을 상실한 ‘좀비기업’들로 경제 활력이 급격히 저하됐고, 임계점에 도달한 청년 실업으로 세대 간 갈등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저성장의 구조화는 드러난 결과일 뿐이다.

저성장의 구조화를 깨기 위해서는 잠재성장률을 높여야 한다. 현 상황에서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투자 확대다. 투자가 늘면 신규 고용이 창출되고 가계 소득이 증가해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다. 또 투자가 활성화되면 경제상의 효율이 증진될 수 있다. 투자는 기업이 한다. 그룹 회장이 수감되면 그룹의 투자 프로젝트는 표류하기 마련이다. 사면으로 기업인에게 특혜를 베풀라는 것이 아니다. 사면으로 그동안 지연된 대규모 투자가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원활하게 집행되고 신성장 동력 탐색에 도움이 된다면 사면을 백안시하지 말자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기업인에 대한 사면은 매우 제한적이다. 박 대통령 자신이 ‘대기업 총수에 대한 사면 제한’을 대선 공약으로 걸었기 때문이다. 2014년 1월 5925명의 특별사면을 단행했으나 기업인은 포함되지 않았다. 201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5812명의 사면이 이뤄졌지만 오너 기업인은 한 명에 불과했다. 기업인이 역차별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익 편취의 목적이 없었으며, 피해 보상이 이뤄졌고, 민형사상 합의가 완료됐고, 법에 정한 기준 이상으로 형량을 충족시켰다면 경제 현장에서 열심히 뛰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 순리다. 김승연 회장은 2014년 2월 집행유예로 출소한 뒤 삼성의 화학·방산 계열사를 인수해 구조조정을 꾀하고 이라크 신도시 건설사업 수주 등 공격 경영을 펼쳤다. 이제는 집행유예의 족쇄를 풀어줄 때가 됐다. 이재현 회장은 문화산업 불모지에서 지난 20년간 문화콘텐츠산업에 대한 투자로 글로벌 한류 비즈니스 플랫폼을 구축해 CJ그룹을 대표적인 문화콘텐츠 기업으로 육성했다. 그 기여를 인정해야 한다.

기업가정신만큼 소중한 자산은 없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회로 역이용한 기업가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과감한 투자 선점과 품질 경영으로 위기의 물결 위에 올라타지 않았다면 평범한 기업에 머물렀을 것이다. 기업인의 사기를 북돋고 기업가정신을 고양시키는 것 이상의 경기 부양책은 없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