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통계와 질문의 힘
해마다 노벨상 시즌이 되면 누가 상을 받을지도 궁금하지만 수상자 중에서 유대인이 몇 명이나 포함돼 있는지도 늘 관심사다. 올해도 노벨상을 받은 12명의 개인 수상자 중 유대계 출신이 6명으로 절반을 차지했다. 이스라엘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학교에서 뭘 배웠니?”라고 질문한다. 이스라엘의 학부모는 우리와는 조금 다르다. 그들은 뭘 배웠는지 대신 선생님에게 어떤 질문을 했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창조경제 시대를 맞아 이스라엘 국민의 높은 창의성의 원천을 ‘항상 궁금증을 가지고 질문을 하는’ 태도에서 찾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질문의 힘은 인구 750만에 불과한 이스라엘을 세계 제일의 창업국가로 이끈 창조정신인 후츠파(Chutzpah)로 이어진다. 후츠파는 대담함, 뻔뻔함, 놀라운 용기란 뜻의 히브리어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말한다.

해외로 유학한 한국 학생들이 유학 초기에 외국 강의실에서 겪는 당혹스러움 중 하나는 바로 활발한 질문과 토론수업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한국 유학생들은 꿀 먹은 벙어리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외국 학생들은 엉뚱한 질문은 물론이고, 뻔하고 유치한 내용까지도 당당하게 묻는다. 그런 질문을 한 학생들을 마음속으로 비난도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늘 한결같다. “좋은 질문이야(Good question).” 이런 반응은 더 좋은 질문과 충실한 수업으로 이어지게 된다.

며칠 전 경북 상주에 있는 통계교육 연구학교로 지정된 한 중학교에서 특강을 했다. ‘통계와 빅데이터’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였지만 최대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200명이 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라 질문이 많진 않았지만 일부 학생들의 질문 속에서 통계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해를 확인할 수 있어 반가웠고 우리 세대와는 다른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질문 태도에서는 부러움과 대견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진보의 역설’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미국의 경제전문 작가인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숫자를 고문하라, 그러면 그들이 자백을 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통계를 배우기 위해 숫자에 고문까지 할 필요는 없다. 고문 대신 질문을 하면 된다. 질문은 스토리텔링 학습의 출발이고 통계와 친해지면 창의력의 원천인 좋은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박형수 < 통계청장 hspark23@korea.kr >